가족이라는 이름의 불완전한 수용

예전보다 더 따뜻해진 짐 자무쉬의 세계

by 채수빈

'마더 파더..? 뭐였더라...'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목이 도통 입에 붙지 않았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의 순서는 참 헷갈렸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자연스럽게 기억된다. 이 영화는 'father', 'mother', 'sister brother'의 세 편의 단편 이야기를 이어 붙인 구조이다. 영화의 줄거리나 예고편보다도 감독의 이름을 신뢰하며 갔다. 원래도 짐 자무쉬가 선보이는 여백이 가득한 분위기를 좋아했고, 이번에도 그 미니멀리즘적 매력은 여전했다. 다만 어쩐지 예전의 영화들보다 더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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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은 모두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소원해진 부모를 오랜만에 마주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침묵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저 견뎌야만 하는 거리감 말이다. 짐 자무쉬 특유의 정적인 연출은 이 상황을 코미디로 만들기 딱 적합하다. 뚝뚝 끊어지는 대화들에서 밀실감이 생기고, 인물들은 이 상황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서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든 피하려 속내를 숨기지만 그럴수록 솔직한 내면이 드러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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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장에서 가족이 써야만 하는 '가면'이 잘 묘사된다. 이 중에서도 관객이 많이 웃게 되는 이야기는 첫 번째 장, 'father'다.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남매가 어머니의 장례 이후 홀로 지내는 아버지를 찾아가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려가는 차 안에서부터 긴장감이 조성된다. 명쾌하게 사건을 정리해 주는 대사나 행동은 없지만, 남매간에도 큰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좁은 차 안에서부터 시작된 긴장은 아버지의 오두막에 도착하면서 정점을 찍는다. 계속 허둥지둥하던 아버지는 남매의 투덜거림과 걱정이 무색하게 사실 아주 잘 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밉지 않고 귀여운 아버지를 보며 관객은 피식피식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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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두 번째 장 'mother'은 더블린에서 펼쳐지는 두 자매와 어머니의 만남을 보여준다. 성공한 작가인 어머니는 매년 같은 방식으로 두 딸을 초대해 티타임을 가진다. 모델하우스처럼 완벽하게 정돈된 집에서 이어지는 대화는 어딘가 서먹하다. 성인이 된 딸들은 어머니 앞에 서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아이로 퇴행한다. 어머니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잘 살고 있다며 자신의 성공을 과장해서 말하는 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같은 중요한 것들을 말할 용기는 내지 못한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관계는 가족 간의 불편함이 1장보다 더욱 느껴진다. 세 단편 이야기 중 내가 가장 공감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 'sister brother'은 파리에서 시작된다. 부모를 잃은 쌍둥이 남매는 부모의 아파트를 정리하기 위해 다시 모인다. 앞선 두 장과 달리, 서로에게 솔직하고 유대감이 깊다. 흔히 말하는 '현실 남매'와 달리 사이가 너무 좋아 당황스럽기까지 하다가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서로밖에 없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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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는 비록 앞선 두 챕터와 달리 애틋한 감정이 주가 되지만, 영화 내내 강조되는 '가족 간 비밀'이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핵심이다. 1장의 아버지는 어쩐지 자신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숨기려 하고, 2장의 자녀는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괜히 큰소리친다. 가족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기 위해 비밀을 계속 만든다. 3장에서는 이 거리감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쌍둥이 남매는 부모님의 장난스러운 위법 행위들의 흔적을 발견하는데, 웃으며 우리는 부모님을 참 몰랐다고 말한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은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관객이 그저 짐작만 해볼 뿐이다. 이 태도를 정확히 요약하는 테마가 영화 전반에 반복되는 농담, "Bob's your uncle"이다. 외국에서는 "이게 다야", "식은 죽 먹기지", "간단해", "그럼 끝이야" 등으로 사용되는 관용구라고 한다. 어떤 어조든, 결론을 수용할 때 쓰는 말인 셈이다. 가족 관계도 그런 것이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당신이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런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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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음악이다. 자무쉬 감독이 영국 싱어송라이터 Anika와 함께 작업한 곡들 중, 특히 'Spooky'는 이 영화의 정서를 완전히 압축한 곡이다. 노래의 느긋한 리듬이 영화와 참 닮아 있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온전히 알 수 없는 어리둥절함이 느껴진다.


가족 사이의 어쩔 수 없는 불완전한 수용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미묘한 불편함과 우스움이 계속되다가 등장한 봄날 같은 장면에서는, 감독이 관객을 은근하게 위로하는 느낌이 든다. 이제 답답한 마음이 들 때 'Bob's your uncle'이라는 말을 한 번쯤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다.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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