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 임승수
나는 많은 책들이 1장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일찍 풀어낸다고 느낀다. 마음 급한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도 그렇다. 이 책은 시작부터 묻는다. 왜 글을 쓰는가? 임승수 작가는 “글은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에서 나온다"라고 말하며, 글쓰기 이전에 태도의 문제를 먼저 짚어간다.
나 역시 서론을 쓸 때 많은 것을 결정한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확인할 수 있는 구간이다. 서론이 잘 써진다는 것은, ‘그래서 내가 뭘 말하려고 하는 거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렸다는 신호이다. 왜 쓰는지를 안다면, 그 이후의 문장들은 비교적 덜 흔들린다. 목적 없는 노동으로 글쓰기가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다.
2장과 3장으로 넘어가면 책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진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는 조언, 편집자와 독자의 시선을 염두에 두는 방법, 출간 구조에 대한 현실적인 설명까지 비교적 실전적인 팁들이 이어진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실제로 나도 글을 쓰기 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 덕을 톡톡히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제를 내어주신 교수님의 전공 분야를 찾아본다던가, 심지어는 그의 논문을 읽어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외국인 교수님께 배울 때는 어떤 나라에서 오셨는지도 참고한 적이 있다.
다만 그렇기에 이 지점에서 나의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일수록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하게 될 수도 있다. ‘이걸 좋아할까?’, ‘이게 너무 개인적이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이 앞서면서 정작 쓰고 싶은 이야기를 미룰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공모전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반대의 순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먼저 쓰고, 그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다. 투고를 할 때 작가가 말하는 '차별화 요소'를 찾는 것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차별화 요소. 출판사는 늘 묻는다. ‘비슷한 책이 이미 있다면, 굳이 이 책을 새로 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라야 한다. 단순히 ‘다르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어떻게, 그리고 왜 나은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며, 나아가 이 차별성이 독자의 구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차별화는 내용의 깊이나 문제의 톤, 대상 독자의 범위, 혹은 형식적인 구성 방식에서 비롯될 수 있다. 기존 책들이 압축적이고 난해했다면, 더 쉽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책의 강점이 된다. 또, 기존 책들이 피상적인 정보만 나열했다면, 풍부한 사례와 깊이 있는 분석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차별화될 수 있다.
또 어떤 경우엔 저자의 독특한 배경이 곧 차별성이다. 예컨대 기존 클래식 음악 감상 책의 저자가 예술가 일색이라면, 프로 연주자가 쓴 책은 ‘내부자의 시선’이라는 신선함을 줄 수 있다.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 197~198쪽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지점은 사실 작가의 이력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글치'였던 이과생이 인문교양 전문 작가가 된 것에는 그 어떤 글쓰기 팁보다도, 용기와 실행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느꼈다. 예전에 나는 네이버 블로그 인플루언서가 된 뒤, 그 이력을 발판 삼아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 출판사에 투고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동료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참고로 네이버 인플루언서는 떨어졌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브런치는 1수만에 합격했다.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필수 자격’을 모두 갖춘 뒤에야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 자체가, 가장 큰 지연 요인일지도 모른다.
단행본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라고 하면 어떻게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냐고 신기해한다. 작가는 하얀 백지에다가 무작정 한 문장씩 쌓아 올려 책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다르다. 건축가가 설계도 없이 무턱대고 벽돌을 하나씩 쌓아야 집이 골조를 제대로 갖출 수 있겠는가. 글도 마찬가지다.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 112쪽
그런 자격 요건을 스스로 세우는 것은, 출간이 그만큼 막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출간에 대한 형체를 그려줄 수 있는 책이다. 미래의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그려봤다. 결국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동어반복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바로 작가 본인일 것이다. 활자 너머 사람이 느껴지는 책이 가장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글을 썼는지가 느껴지는 책. 이 영역만큼은 그 어떤 챗 GPT 프롬프트도 대신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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