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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리하는 이유

본질을 찾기 위해

by 채수빈

나의 취미는 '정리하기'다.


책장 정리, 옷장 정리, 사무실 서랍 정리, 사진첩 정리, 휴대폰 속 앱 정리...

마음이 복잡하면, 가장 어지러워 보이는 곳을 정해 다 끄집어내고 정리를 한다.

그러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보인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내가 자주 꺼내 읽는 책을 가장 앞쪽에 놓는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더 이상 안 입는 옷을 인정하게 된다.

사무실 서랍을 정리하면서 까먹고 있었던 일을 (다행히) 기억해내는 경우도 있다.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중복된 사진을 지우고, 오랜만에 추억을 돌아본다.

(가끔은 정말 용기내어 사진 속에 있는 이에게 연락도 해본다.)

신기해서 다운받아놨지만 결국 한 번도 안 쓴 앱들은 지운다. 읽지 않은 메시지, 이메일도 '읽음' 처리를 한다. 더 이상 읽지 않는 뉴스레터는 구독 취소도 한다.


이렇게 비워내야 채울 자리가 만들어진다.



내게는 '기록'도 일종의 '생각 정리'다.

이리 저리 흩어진 생각의 파편들을 범주화하고, 구조화한다.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도록 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이 '생각 정리'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why'에 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왜 했더라?

왜 하고 싶었더라?

나는 왜 지금 이렇게 되었을까?

에 대한 답들.


어떻게 보면 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모든 것을 담아본 후 그 중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지 순위 매김을 해본다.

나의 본질과 핵심은 이 중에서 무엇인지.




다만 내가 정리하면서 가장 경계하려고 하는 것은 '정리를 위한 정리'이다.

단순히 깔끔해 보이려고 하는 목적을 잃은 정리.

특히 너무 비워내는 것에만 집착해 진짜 중요한 것을 버리게 되는 정리는 그야말로 최악의 정리다.


작년에는 불렛 저널을 써서 자유롭게 다이어리를 만들어 갔는데,

올해 1월엔 선물받은 위클리 다이어리를 사용했다.

연보라색 가죽 커버가 예뻐서 써봤는데, 역시나.


위클리 다이어리여서 데일리 칸이 너무 작았다.

이 선 안에 나의 하루를 우겨넣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정작 필요한 내용, '회고'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내일을 미리 점쳐보는 것이 중요한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렇다고 불렛 저널로 돌아가자니 연습장처럼 쓰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 주, 한 달을 돌아보기 힘들어서 어느 정도의 틀이 필요한 것 같긴 하고...


연보라색 커버를 매만져보다가, 결국 연분홍 스타벅스 프리퀀시 다이어리로 바꿨다.

그리고 회고 전용 다이어리를 따로 만들었다.


점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곁에 남겠지.

내 곁엔 무엇을 두고 싶을까.

내 하루는 어떻게 구성될까.






(+ 결론! 연장 탓하는 저 같은 사람은 다이어리는 직접 산 걸로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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