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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사랑한다는 건 아끼지 않는 것

영화 라라랜드는 꿈에게 고백하라 한다

by 채수빈

버킷리스트는 이번 생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비유하는 단어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 애타는 소망에 비해 이 단어가 너무 많이 쓰이고 있어서일까, 그 애타는 마음이 잘 전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버킷리스트1.PNG


재작년,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이루었다. 나는 다섯살 때부터 영국에 가고 싶었다. 단순 여행이 아니라, 그곳에서 삶을 꾸려보는 것을 원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사진을 A4용지가 들어차게 인쇄해 방 벽지에 붙여놓기도 했다.


잉크가 살짝 바랜 그 사진을 보면서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호그와트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 그저, 왠지 저 곳은 나의 새로운 집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옥스퍼드1.PNG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가지 못했다. 워킹 홀리데이에 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냥, 열심히 살다 보니 인서울 대학교에 와서 학점을 관리하고 있는 성실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나는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기다렸다는듯이 번아웃이 왔다. 문득 거울을 보니 휴직 기간을 가져야 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휴직한지 일주일이 지나가던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오후인데 방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물컵에 물을 따라 마시지도 않고 2리터짜리 물병을 입에 대고 마셨다. 사는 게 귀찮았다. 의자에 걸터앉아 의자 다리를 흔들며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단순히 휴직을 한다고 쉬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홀린듯 핸드폰을 켜 영국행 티켓을 예매했다. 예매는 10분만에 이루어졌다.


하이드파크1.PNG 런던 하이드파크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선뜻 권해준, 귀인같은 친구의 집에서 머물며 나는 영국에서 2주일 동안 살게 되었다. 영국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나가던 날 웨스트엔드에서 버블티 카페에 들어갔다. 착석했는데 한국 가요가 흘러나와 묘한 반가움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빨대를 쪼록 물었는데, 그 때 들려온 가사를 듣고 순간 멍해졌다.


친구로 지내다 보면, 계속 네 옆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했어.

친구로 지내다 보면, 네 눈에 비친 나를 보면,
언젠가는 나의 눈에도 네가 있지 않을까 했어.

<친구로 지내다 보면>, 빅나티


옥스퍼드 대학교 사진만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워킹 홀리데이를 계속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미친듯이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고백해서 이쪽으로 진즉에 왔어야 했다.


꿈은 사랑과 같아서, 고백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영화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은 각자 짝사랑하는 꿈이 있다.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운영하겠다는 꿈이 있고, 미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재즈와는 거리가 먼 세트리스트, 줄줄이 낙방하는 오디션이다. 그래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꿈을 놓진 못하되 점점 우러러보기 시작한다.



이 때, 그들은 서로에게 자극을 준다.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세바스찬은 자신감을 잃은 미아를 오디션장으로 데려다준다. 각자의 사랑을 이루어준 채 둘은 이별한다. 꿈은 아끼는 게 아님을, 그 이별 덕분에 깨달은 둘은 꿈과의 사랑에 성공한 채 다시 만난다.



'라라랜드'는 영어로 몽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She is living in a lala-land."라고 말하면, 그녀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나는 짝사랑이 그 라라랜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라라랜드에 있지 말고, 진짜로 꿈에게 고백하라고 독촉하는 영화이다.


어느덧 바라만 보고 있는 꿈이 있다면, 올해에는 그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고백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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