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모이면 이야기가 생겼다, 글쓰기처럼
아트인사이트는 올해 내가 시간을 가장 많이 쏟은 활동 중 하나였다. 평일, 퇴근 후 문화초대를 다녀온 뒤 감상이 휘발되기 전 책상 위 포스트잇에 요상한 글씨로 메모를 남겨놓는다. 주말의 나에게 인수인계를 남긴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불친절한 글을 더듬어가며 리뷰를 완성한다. 내 고유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정기 기고문까지 쓰고 나면, 어느새 주말이 끝나 있다. 하하하. 즐거웠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단순히 즐거움만으로 에디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무언가가 전달되길 바라며 발행 버튼을 누른다. 첫 에디터 기간을 마치고 컬쳐리스트로 지원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님들과의 교류였다. 이 '전달'에 대한 고민을 함께 공감해 줄 이들이 필요했다.
모임 배정에 있어 내가 고른 관심사는 '공연, 피드백, 글쓰기'. 그리고 그렇게 세희님, 승원님을 만났다.
우리는 모두 온라인 모임이 가능했던 덕분에, 격주로 구글 밋을 통해 '일단 모였다'. 아트인사이트 기고 활동처럼, 컬쳐리스트 모임 또한 정해진 형식이 따로 없다. 세희님, 승원님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첫 만남 전, 초조함이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안이 많기 때문에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많이 생각했다.
그렇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어렵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우리는 그간 글을 쓰며 힘들었던 것들을 토로했고 웃음이 터졌다. 향유한 문화초대가 겹치는 날엔 더욱 할 얘기가 많아졌다. 지금의 나를 솔직하게 보이며, 앞으로를 리프레시하는 자리를 만들어갔다.
모임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일단 모이면' 주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글쓰기처럼 말이다. 오히려 주제를 정하고 모인 날은 주제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아서 어색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귀여움 자랑 대회'를 열어 소비한 것 중 가장 귀여운 것들(특히 문구류)을 하나둘씩 화면으로 경쟁했는데, 소비 생활이다 보니 우리의 최근 고민들과 닿아 있어 글쓰기와 관련된 생각을 자연스레 나누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내가 자랑했던 키캡 키링)
자유로움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니 배움이 더욱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세희님의 문장 수집법, 필사의 출처들. 그리고 승원님의 '솔직하게 쓰려고 한다'는 말씀을 듣고 글의 본질을 스스로 되새겨보곤 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정해놓은 것은 모임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바로 '산 넘어 산'. 처음에 우리의 이름에 시옷이 모두 들어가 'ㅅㅅㅅ'으로 정했던 것이, 산 모양으로 보여 '산 넘어 산'으로 발전되었다.
글쓰기는 정말 '산 넘어 산'이다. 그럼에도 이 산을 굳이 계속 넘고 싶은 이유는, 바로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트인사이트의 컬쳐리스트로 함께한 우리는 서로의 독자이자, 같은 하늘 아래 각자의 산을 오르며 서로를 응원한 동반자였다.
올해를 회고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머릿속으로 2025년을 펼쳐보았을 때 여러 얼굴들이 아른거린다. 영화, 드라마, 공연 등 이야기를 사랑하는 나지만 결국 기억나는 것은 사람이다. 2025년의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떠올리면, 산을 함께 넘은 후 맛있는 걸 먹으며 수다 떨던 기분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글을 다 썼을 때의 시원함에 대해 얘기한 우리처럼.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산 넘어 산'의 에디터님들의 글들이다.
세희님의 다정한 글
다정하고 술술 읽히는 에세이를 쓰시는 세희님.
세희님의 글에서 나를 발견하지 않기란 어렵다.
2년의 그네 타기가 내게 남긴 것. 수평이 중요해.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5508
승원님의 여름같은 글
승원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릴 때 처음으로 학교를 조퇴하고 마주한 고요함이 기억난다.
세상이 느릿느릿 돌아가는 걸 계속해서 구경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