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희망 고문을 끝낼 수 있을까

연극 <도어 넥스트 헤븐> 리뷰

by 채수빈


연극의 제목이자 배경이 되는 라이브 바의 이름이기도 한 '도어 넥스트 헤븐'. 만약 한국어로 제목을 짓는다면 바의 이름이 ‘희망 고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이름의 바에선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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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도어 넥스트 헤븐'이 오는 24일부터 12월 21일까지 대학로 카페 CIRCA1950에서 공연된다. 실제 카페 공간 전체를 무대로 활용하는 극으로, 두 명의 배우들은 카페 내부와 관객 사이를 끊임없이 맴돌며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배우들은 관객을 의식하는 듯 의식하지 않는다. 완전한 이머시브 공연이라기엔 관객은 배우들의 대화를 엿듣는 위치에만 머문다. 실제 카페를 대관해 진행되는 극은 처음이었기에 신비스러운 긴장감을 안고 관람했다.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가 걸어와 멍한 표정으로 헤드셋을 끼더니 자리에 앉았다. 이어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나타나 관객들을 바라보며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는 대사를 한다. 이후에는 계속 둘의 대화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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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대화를 통해, 관객은 두 남자의 관계를 짐작하게 된다. 바의 젊은 사장과, 직원으로 보이는 후드티를 입은 청년.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딘가 묘하다. 직원은 사장을 가지고 노는 것 같으면서도 그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는듯하고, 사장은 혼란스러움이 가득해 보인다. 그는 뮤지션을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람이나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 체념하고 있다. 반면 직원은 그가 탐낼만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로, 작곡과 작사를 단숨에 해낼 뿐만 아니라 맑은 음색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직원이 부른 노래가 인상 깊게 들은 에이전시의 전화를 계기로, 둘은 서로의 천사가 되었다가 악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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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화는 사라지지만, 어느새 완성되어 있는 노래만이 라디오에서 계속 재생된다. 눈에 보이는 것 중 가장 확실하고 영원해 보이는 것은 예술이다. <도어 넥스트 헤븐>은 그것을 갈구하는 자와 이미 가진 자의 이야기다. 극은 두 남자의 각기 다른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은 욕망 바로 언저리에 살 때라는 점이다. 서로 원하는 걸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의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도어 넥스트 헤븐'은 대화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2인극이다. 천국과 지옥의 문턱에서 거래가 성립될 듯 말 듯 한 그들의 대화를 듣는 사이 관객은 갖고 싶지만 내 힘으로는 쟁취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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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극에서 내게 역시 가장 와닿았던 대사는 정확히 생각 나진 않지만 “꿈이 멀어지면 불안하고, 가까우면 조금 무섭다"라는 사장의 대사였다. 꿈이 가까워질수록 그 끝을 확인해야 하는 두려움, 그러나 멀어질수록 아예 사라질까 두려운 불안이 나를 덮친다. 사장은 그 양가감정 속에서 회피를 선택한다. 그렇게라도 꿈을 붙들고 싶어서다.


반면, 직원은 자신은 재능이 있기에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자격을 부여한 셈이다. 사장은 자신이 직원의 음악적 재능에서 덕을 보려고 거둬준 게 아니냐는 직원의 말에 어이없어 한다. "너의 재능이 탐 나서 너를 곁에 둔 게 아니다"라고 응수한다. 그의 말을 듣고도 직원은 끝내 믿지 않는다. 관객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사장의 말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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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캐스팅보드에는 '젊은 사장' 그리고 '청년'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극의 트라이아웃 때 이들은 모두 악마로 설정되어 있었다. 표기된 이름은 달라졌지만 둘 다 악마라는 설정은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서로를 못 믿고 관계가 파탄 나기 때문이다. 천사가 악마와 계약하는 순간 천사는 천사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희망 고문을 끝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악마라면 우리에게 희망 자체가 고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고문을 끝내주겠다며, 희망을 의심으로 오염시킬 것이다. 반면 천사라면 도리어 희망이 있기에 고문 같은 지금을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즉, 천국으로 가려면 내가 어떤 것을 희망으로 삼을지가 중요해 보인다.


https://youtu.be/MiAoetOXKcY?si=cCiDfTtrkSG5JkDw


라나 델 레이의 〈 Say Yes to Heaven 〉이라는 팝송이 보는 내내 떠올랐다. 노래 제목이자 반복되는 후렴구 가사인 “Say Yes to Heaven”은 사실 상대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한 주문처럼 들린다. 너에게 응한다면, 나는 나에게도 응할 수 있을까.


*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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