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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정 Jan 03. 2022

이제는 친구가 떠나는 나이가 되었다

30년 지기를 기리며

사회 친구 중에 30년 된 친한 지기가 있다. 그 남편인 정아 아빠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직접 내게 전화를 건 것은 처음이다. ‘아직도 교편을 잡고 있느냐, 지금 어디냐, 식사라도 한 번 하자’라고 한다. ‘남의 남편하고 내가 밥을 왜 먹어요?’라고 대답하며, 옆에 있으면 정아 엄마나 바꿔 달라고 했다.


정아 엄마는 여행을 갔다고 했다. 어디를 갔느냐고 하니 먼 곳으로 갔다고 한다. 먼 곳 어디냐, 언제 돌아오느냐고 하니 아마 안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졸혼이라도 했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둘이 금실이 좋아서 헤어질 부부가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화기 너머로 ‘스카이...’라는 말을 언뜻 듣는 순간 재차 ‘어디요?’라고 물었다. 다시 ‘스카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인지능력은 그 순간 길을 잃었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장난칠 일이 따로 있지...’ 마음을 가다듬은 후, 죄스러운 상상이지만 어렵게 입을 떼었다.


“설마 정아 엄마가...?”

“암으로 3년 동안 투병하다가 3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어머 어떡해....”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건강하고 밝고 개구쟁이 같던 그 친구가? 말도 안 돼!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렀다.


내 친구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남겨두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외롭게 혼자 갔다. 먼 길을 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하얀 산의 둘레길을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떠나면 그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잖아. 아이고 불쌍한 내 친구,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리 먼저 떠나는가!


그 친구와는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끊어졌다. 보고 싶기도 해서 전화를 걸면 통 안 받는 것이다. 연락 좀 하자고 문자도 수차례 남겼다. 정아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그 친구가 남대문시장에서 사돈이 운영하는 식당 일을 도와주고 있다며 직접 전화해 보라는 말만 했다. 결국 연락이 닿지 않자, 내가 싫어져서 내 번호를 차단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정아 아빠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일절 사람을 안 만났다고 한다. 전화도 차단하고 연락도 아예 안 받고, 집에만 있고, 병원에 갈 때만 나갔다고 한다. 항암 치료로 너무 힘들어했는데, 누가 항암 치료한다면 뜯어말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30대 초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동네의 책 대여점이었다.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책을 고르는 모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아직도 어제의 일같이 생생하다. 책을 빌리는 텀이 비슷해서인지 거기서 자주 조우했다. 그러다가 말을 걸게 됐고 같은 빌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동갑내기라는 사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동그랗고 귀염성 있는 얼굴에 말할 때는 광대와 눈부터 웃었다. 머리숱도 빽빽하고, 얼굴도 동안이라 생전 늙지 않을 것 같았다.


배드민턴도 같이 하고, 여행도 같이 가고, 그 당시 처음 유행하기 시작하던 노래방에도 많이 갔다.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을 모두 공개하고 서로를 소개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들끼리도 친하고, 아이들끼리도 친해졌다. 둘이 같이 있으면 어디를 가든 몇 시에 들어오든 양쪽 집에서는 무조건 패스였다.


내가 부부싸움 후 가출할 때도 덩달아 집을 나와 모텔에서 같이 잠을 자 준 친구이다. 아마 서로의 약점과 흑역사를 아는 유일한 친구일 것이다. 내가 교장이 되면 교장실에 내가 좋아하는 참이슬을 한 박스 넣어주겠다고 해서, 나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기가 돈을 많이 벌면 친구들한테 집 한 채씩 사주겠노라고 통 크게 약속했다. 농담도 좋아하고 이상하게도 조직 세계에나 있을 법한 의리가 충만한 친구였다.


그녀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라는 대하소설의 무대가 되는 벌교가 고향이다.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주먹쟁이 염상구가 외서댁을 범한 후 꼬막에 비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때는 태백산맥 읽기 열풍이 불었던 때였다. 그녀는 벌교와 쫄깃쫄깃한 꼬막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컸다.


실제로 벌교에 가 보니 ‘태백산맥’에 나온 장소들이 모두 실존했다. 소화의 집, 현부자네 집, 술도가, 남도여관 등을 둘러보며 감개무량해했다. 소화다리 근처에서 말로만 듣던 꼬막정식 요리도 난생처음 먹어보았다. 꼬막 튀김, 꼬막무침, 꼬막 부침개 등 꼬막 하나로 그렇게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푸짐한 양에 맛도 하나같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와의 추억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이제 누구와 이 소중한 추억을 나눌 수 있을까. 마치 내 인생에서 젊은 시절이 한꺼번에 송두리째 빠져나간 느낌이다. 친구를 잃은 비통함과 혼자 허허벌판에 남겨진 쓸쓸함은 난생처음 느껴본 감정이었고 충격이었다.


네가 그렇게 영영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 녀석아... 그렇게 갈 거면 얼굴이라도 보여주지... 내가 사주는 맛난 거 한 번 얻어먹고라도 가지... 나도 그렇게 세브란스병원에 다녔는데 어떻게 우리 얼굴 한 번 안 마주쳤을까? 나나 너나 어쩜 친구 아니랄까 봐 그렇게 모진 병을 각자 안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보고 싶다 내 친구야, 자꾸 눈물이 나는구나. 깊은 슬픔 속에 너를 애도한다. 부디 좋은 곳에 가길 바래. 먼저 간 사람이 터 잘 잡고, 아주 아주 잘 지내고 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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