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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정 Jan 11. 2022

나이 들면 세로토닌형 인간으로 살자

도파민형 인간에서 벗어나

사람마다 악몽이 있다고 한다면, 나의 경우는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장면이다. 시험 문제를 다 못 풀었다거나 공부를 안 한 것이 출제되거나 그런 식이다. 40년도 더 지난 마당에 학창 시절의 시험이 아직도 악몽으로 등장하다니 무의식의 세계는 놀랍다.    

  

시험을 망치면 좋은 대학에 갈 수가 없고, 전교 등수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부모님이 실망하는 모습, 사람들이 날 무시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최근에 꾼 악몽, 아니 시험 치는 꿈은 좀 달랐다. 여전히 시험 문제는 어려웠고 지문도 많아 해독 자체가 불가능했다. 시험 종료령이 울리자 마킹도 못 한 내 답안지를 수합해 갔다.


나는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더니, 갑자기 책상 위에 남겨진 문제지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풀면 모두 풀 수 있어’ 자신을 다독이며 다 못 푼 문제에 도전하는 모습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자 내 안에서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점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문제를 풀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심이 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시험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였다.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시골의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게다가 남동생 둘을 가진 장녀가 대접받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부모의 면을 세워주었고, 서울로 입성하여 공립고의 교사가 되도록 해 주었고, 경제적 문제 역시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나의 경우는 학창 시절, 특히 고 3 때 공부 한번 잘한 것이 평생을 좌우했다. 어린 나이에 수직상승 같은 인생 역전을 경험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는 가치관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목표지향적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꿍꿍이 속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단언컨대 내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이유와 목표가 있었다. 성취감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반평생 동안 현재를 저당 잡히고 미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 피해는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왔다. 삶에 여유가 없는 사람이 되었고, 워커홀릭에 외로운 사람이 되었고, 우울한 사람이 되었다. ‘치열하게 산 덕분에 그래도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지 않은가’라고 위안을 찾은 적도 있다. 그러나 나처럼 살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은 주변에 수두룩했다.   

   

도파민은 성취감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음식이나 약물, 일, 쇼핑, 도박 등을 할 때도 분비되며 중독성이 강하다. 지금은 안 마시지만 한 때 술을 꽤 마신 적이 있다. 술은 마실수록 양이 많아지고, 쾌감 호르몬이 나오는 시간도 지연되었다. 결국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것이 도파민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세로토닌은 안정된 생활을 할 때, 어떤 일에 자발적으로 몰두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그래서 현재에 만족할 때 나오는 행복 세로토닌이라고 한다. 반면에 도파민은 현재의 삶이 불만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호르몬이다. 

     

그렇게 나의 '인생 호르몬'은 도파민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무리하게 승부수를 던져도 되는 때가 있었다. 젊고 건강할 때는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이기려고 소진한 에너지와 졌을 때의 상심이 더해져 회복 탄력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거기에다 늙어서 그렇다는 자기 연민까지 겹치니 번아웃이 될 정도였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갈망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도록 했다. 


상징적이게도 꿈에서 나는 도파민형에서 세로토닌형 인간이 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지 않겠지만. 생활 속에서 생각을 바꾸고 조금씩 실천해 보려고 한다.

       

1. 횡단보도에서 초록색 불이 깜빡일 때 무리하게 건너지 않는다. 목적지에 일찍 간들 뭐 그렇게 좋은 일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주변을 구경하며 여유 있게 다음 신호를 기다리자.  

 

2. 시합도 악착같이 이기려고 하지 말자. 관절 나가면 평생 운동 못 한다.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사람들과 놀 수 있음만으로 감사해라. 진정한 승자는 즐겁게 놀 줄 아는 사람이다!   

 

3. 마작할 때도 1판에 자존심 대결하지 말자. 스트레스받아 독성 코티졸이 분비되면 나만 손해이다. 짜장면 사줬다 생각하고 많이 웃고 수다 떨고 오자. 덕분에 서로 집에도 가보고, 초대도 해보고 정답게 지내는 친지들이 생겼다.      


4. 경제적인 문제에도 여유를 가지자. 돈 벌 기회를 놓친 것에 애달파하지 말자. 투자에 실패한 상가도 관리비 정도만 나가니까 그리 문제 되지 않는다. 그린벨트에 나대지 하나 사둔 걸로 치자. 


5. 늙어감에 한탄하지 말자. 사진을 볼 때마다 예전같이 안 나온다고 속상해했다. 보여줄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잘 나와봤자 결국은 혼자 보고 즐기는 것이다. 늙음과 못남을 받아들이고 내 취향으로 멋스러운 노년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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