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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Aug 22. 2024

집 나간 감

소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자 제주로 내려갔다. 사실은 업무를 핑계로 떠난 짧은 휴가였다. 서울의 후덥지근한 더위도 피할 겸. 겸사겸사. 제주는 서울보다 그나마 낫겠지 싶었는데 제주도 어김없이 습하고 더웠다. 그래도 제주가 서울보다 나은 점은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것이었다. 얼른 제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시원한 바닷물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덩 빠지고 싶었다. 얼마나 시원할까.

드디어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물놀이를 하러 제주의 한 포구로 갔다. 포구에 도착하니 청명한 하늘과 반짝이는 윤슬이 가득한 바다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간 서로 누가 더 높나 대결하는 건물이 가득한 도심 속에서만 지내다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니 시끄러운 마음속에 고요함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강렬한 햇빛 탓에 바다 감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제주 바다에 가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다이빙이다. SNS에서 우연히 높은 곳에 뛰어내려 공중에서 유선형을 그리며 입수하는 모습의 영상을 보았다. 마치 물 위에서 점프하는 돌고래 같았다. 영상을 한 번 봤을 뿐인데 SNS에서는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계속해서 다이빙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홀린 듯이 다이빙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직접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래서 제주에 가면 꼭 다이빙을 해보리다라고 결심했다.

포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을 하거나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채 바다에 몸을 맡기는 식으로.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하늘을 향해 뛰어올라 입수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곧 저 사람들처럼 다이빙을 할 생각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이빙 구역에 점점 다다를 때쯤 나의 시야에 하나의 경고문이 들어왔다. 다이빙, 물놀이 위험지역으로 안전사고 다발지역이라는. 경고문을 보고 나서는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간 시간대는 마침 만조로 다이빙하기에 문제가 없는 수심이었다. 제주도민의 괜찮다는 말에도 불안했다. 다이빙 구역에 도착하니 멀리서 볼 때보다 더 높아 보였기에. 내가 정말 다이빙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제주까지 온 이상 시도는 해봐야지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전문가에게 다이빙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한쪽 손을 다른 한쪽 손으로 덮은 채 팔을 머리 위로 일자로 펴고, 위쪽 팔을 귀 옆에 붙인다. 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허리와 무릎을 굽히고, 시선은 발끝을 바라본다. 손과 머리가 입수할 때쯤 굽힌 다리를 펴야 한다. 그렇게 가르침을 전수받고 나서 혼자서 다이빙을 시도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로는 이론을 이해했다만 나의 슬픈 몸뚱아리는 이해를 하지 못한 거 같았다. 손끝부터 서서히 입수를 해야 하거늘 나는 얼굴과 상하체가 동시에 입수를 했다. 일명 배치기 다이빙이었다.

좀처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이빙에 점점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히 나는 알려주는 대로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왜 자꾸 배로 떨어지는지 답답했다. 다이빙하는 나의 모습이 궁금하여 영상을 찍어준 친구에게 영상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영상을 보고 나니 주변 사람이 웃기도 했다가 마지막에는 아련하게 쳐다보기도 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나는 전문가가 알려주는 대로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영상으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나서 다이빙을 다시 시도해 보았다. 시도를 거듭할수록 점점 자세가 나아지는 거 같았다. 다리는 여전히 피지 못한 채로 입수하고 있지만 초반보다는 나아지고 있는 듯하여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이후 수차례의 다이빙으로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제 감을 잡았다고 떵떵 외치며 매우 흡족한 상태로 다이빙을 마무리하였다. 서서히 물이 빠지는 간조 시간대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다시 밤수영을 하러 오기로 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꿀맛 같은 밤잠을 자고 다시 낮의 다이빙 구역으로 밤수영을 하러 갔다. 그날의 밤바다에는 조업하는 배들의 불빛과 바람에 의해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유난히 가까이 보이던 큰 달이 있었다. 다이빙하기 좋은 날씨라며 낮의 다이빙으로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번 밤수영 때는 기필코 완벽한 다이빙 자세를 완성하리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비장한 마음으로 다이빙을 시도하였다. 어라? 당황스러움이 찾아왔다. 또 배치기를 한 것이다. 아니야. 지금 물이 차갑고 아직 몸이 덜 풀어져서 그렇다며 현실을 부정하였다. 다시 심기일전하여 다이빙을 시도해 보았다. 이번에는 슬픔이 찾아왔다. 낮에 찾은 감이 집을 나간 것이다. 애초에 감이 아니라 운이었던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감 탓에 낙담하였다. 이래서 자만은 하지 말아야 하거늘. 잠시나마 누렸던 자만으로 감이 집을 나간 거 같아 씁쓸했다. 끝까지 다이빙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던 나는 계속 시도해 보았지만 나중에는 체력이 소진되어 끝내 집 나간 감을 되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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