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릿
내 몸의 반만 한 크기의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그리고 세상을 떠돌아다닌 지가 두 달이 지났다. 유럽 한참 아래에 위치한 요르단에서 현지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며 이집트로 가는 배편에 올라탔다. 홍해 반대편에 이집트가 얼마나 멀리 있던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선체가 한동안 꿀렁댔다. 나와 다른 확연히 까만 피부를 가진 무리 속에 섞여 함께 배에 싣고 홍해를 가로지르는데 얼굴은 살짝 굳었고, 배낭을 꽉 쥐어잡은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이집트 다합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본 풍경은 사막처럼 황량했다. 높지 않은 담장들이 줄지어있고, 모래와 흙이 섞어있는 듯한 포장되지 않은 길 위에서 염소들이 버젓이 지나가고 있다. 정처 없이 밖을 헤맸더니 바다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한 바다와 푸른 하늘은 매력적이었지만 동시에 혼자라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여행을 하면서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은 이상 한국 사람들을 무더기로 만날 기회가 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곳은 길을 지나가면서 한국 사람들을 무지 자주 마주치다 보니까 여기가 한국인지 정녕 다합이 맞는지 혼돈스러웠다. 길거리 위에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서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고,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바닷속을 얼마든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인이 운영하는 다이빙샵에 찾아갔고,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은 토비라는 분이었다. 토비에게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이론을 들으며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점차 흥미가 생겼다. 어렸을 때 수영을 잠깐 배웠기에 물에 대한 공포심이 하나도 없었다. 실습을 받기 위해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슈트를 착용했다. 토비의 도움을 받고 무거운 공기통을 뒤에 간신히 업은 채 장비를 착용한 후,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데 어찌나 짜릿하던지 내적 흥분이 되었다. 발부터 시작해서 무릎, 골반, 허리, 가슴, 어깨까지 서서히 물에 잠겼다.
주저할새 없이 토비를 따라 바닷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얼굴까지 담글 때쯤 수영할 때 사용하는 음~파 호흡법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토비가 가르쳐 준 호흡법마저 잊어버렸다. 급기야 물속에서 눈을 보호하고 시야를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마스크에 김이 서려서 그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겁에 질린 나머지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 순간, 바다의 위대함이 나를 덮쳐왔고, 패닉에 빠진 나는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어푸, 어푸, 바다가 원래 이렇게나 무서운 거였나?
‘나 이대로 죽는 거 아닐까...?’
그때, 곁에 있던 토비가 내 손을 힘껏 붙잡고 차분하게 호흡하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그의 눈빛은 깊은 바닷속에서도 명확하게 보였고, 그 마스크 안에 천천히 깜박거리고 있는 토비의 두 눈이 나를 거짓말같이 진정시켜줬다. 토비의 손짓에 따라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고, 점차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러자 깊고 푸른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생명체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느끼는 신비로움이 나를 압도하면서 다시 바다와 화합하는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