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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Sep 09. 2024

그게 나야

매력

나는 농인이라는 이유로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사회 속에 농인으로서 살아가는데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청인처럼 잘 알아듣기는 힘들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당연한 것들에 농인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게 많다. 집 밖으로 걸어가는 것부터, 주위의 차나 교통수단이 지나가고 있는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생존 본능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학교나 회사, 다른 공동체 환경에서도 선생님이나 친구들, 회사 동료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은지 계속 예의주시하면서 눈치를 보게 되거나, 많은 사람을 만날 때는 긴장감을 끝까지 놓을 수가 없다.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지금 청인이었다면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하다가 센스 있는 드립을 치면서 더 재미있게 놀았을 것 같고, 늘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발표도 자신 있게 해서 박수를 받는 쾌감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친구들과 나눈 대화들은 100%까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알아들은 것만 호응을 해주거나, 때론 늦게 알아들어서 말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만한지 무시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딱 한마디라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실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괜히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핑계로 참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저런 사람들은 어차피 잘 몰라서 그런 거니 괜히 상처받지 말자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자신을 꾹꾹 억누르는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해해줘야지,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내 자존감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또는 아직 못 알아들은 건데 모르는 거라고 바보로 놀림을 받기도 하고, 상처도 여러 이유로 많이 받았다.

동사무소에 가면 사회복지가 있고, 장애인 복지도 있는 시설인데 그럼에도 모르는 건지, 무식한 건지 직원이 전화 인증을 부탁한다고 간혹 말할 때가 있다. 황당하지만, 일단 전화는 어려우니 다른 방법은 없냐고, 아니면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도, 본인이 인증해야만 가능하다고 하질 않나 아니면 방법이 없다고 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듣지 못하는 게 죄가 아닌데, 왜 보통 다 그렇게 하는 것을 나는 싸워가면서 해결해야 하는지 속상한 일도 무수히 많다.

원래 사람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는 밝은 아이인데, 사회 속에서는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쓴 채로 지냈다. 괜찮은 척, 알아들은 척, 재미있는 척, 씩씩한 척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소외감으로 인해 외로움은 쌓여만 갔다.

성인이 된 후, 수어만 사용하는 농인 친구들을 처음 사귀게 되었다. 그 친구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자존감은 높았다. 식당에 가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 많이 놀랐다. 나는 왜 안 들리는 것과 말을 잘 못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왜 잘 못 알아듣거나 말 못 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귀가 안 들리는 건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내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농인 친구를 통해 농인만의 문화를 알아가면서 내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조금씩 나를 알리도록 노력했다. 잘 듣지 못하니 필담으로 적어달라고 하거나, 입 모양을 더 크게 천천히 말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드리면 대부분은 배려해주는 반면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이 사람은 뭐야’ 하고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뭐 하나 물어보는 것조차도 못한 소심한 내가 조금씩 부딪혀보기로 용기를 냈다. 한 번 해보니까 어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 번 해보니까 두 번이 되고, 두 번 해보니까 세, 네 번도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단단해지고 다시 한번 더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런 나도 부족하면 어때, 잘 못 알아들으면 어때, 다시 한 번 더 물어보면 되지. 다시 한 번 더 말하면 되지. 잘하고 있다, 잘했다. 칭찬하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도 배웠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 많은 고충을 겪은 덕분에 나는 눈치가 빨라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일할 때 듣지 못하는 대신 집중력을 최대치로 올리는 장점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경험치가 쌓일수록 융통성과 빠른 일 처리가 나의 강점이 되었다. 멀리서 입 모양만 보고도 알아읽을 수 있는 웃긴 능력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앞으로도 부딪혀야 할 숙제가 많겠지만 잘 풀어보자.

그리고 지금은 제주에서 홀로 살이를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나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알리고 있다.

“죄송한데 제가 농인이라 빨리 말씀하시면 제가 잘 못 알아들어요. 입 모양을 보여주시면서 천천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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