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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by 핸드스피크

제주에서 뜨겁고도 따뜻했던 6월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남자친구 생일이 며칠 뒤인데, 혹시 그 날 시간 돼? 서프라이즈로 같이 축하해주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어?”

“그럼!!!! 나 그날 시간 돼!!! 어디서, 몇시, 어떻게 하면 될까?”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서프라이즈 생일파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 다른 친구와 함께 생일 소품을 챙겨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사장님께 허락을 구하고, 서둘러 꾸미기 시작했다.


높은 천장에 반짝이는 유광 실버의 파티 커튼을 달기 위해 의자를 끌어당겼다.

막 올라가려던 찰나,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손님이 말을 걸었다.

“도와드릴까요?”

휜칠한 키에 듬직한 체격을 가진, 키가 180c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남자였다.

“아, 정말요? 고맙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의자가 아니라 사다리차를 가져오더니, 능숙한 손놀림으로 커튼을 척척 달아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이어서 다른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의 도착했다는 친구의 연락에 마음이 급해졌다. 폭죽 준비와 카메라 촬영까지 해야 했지만, 손이 부족했다. 우리는 그에게 한 번 더 도움을 부탁했다.


“제가 신호를 드리면, 생일송을 틀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우리는 성공적으로 생일 서프라이즈를 마칠 수 있었다.


활기찬 분위기에 그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었다.

서로 번호를 교환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그날은 내가 기억하는,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제주 바다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는 반갑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수어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했다.

수어로 인사하자 나도 반가운 마음에 “어? 수어는 어떻게 아세요?” 라고 물으면서 안부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꼭 수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며, 또 헤어졌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우리는 또 마주쳤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대화를 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수어를 꼭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곧 제주살이를 접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던 나는 그 사실이 슬펐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더 아쉬워하며, 슬퍼했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던 우리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서울에서도 이어졌다. 제주를 그리워하던 나를 위해 그는 오로라 행사가 열리던 공원에 데려가주었다. 그리고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해 티 나지 않게 스피커 옆으로 가주었다. 그런 섬세한 배려가 고마웠다.


고음보다 저음이 더 잘 들리는 나를 위해 그는 저음으로 말해 주었고, 어떤 음악이 더 잘 들리는지 데시벨까지 고려해 그런 음악만 골라 들려주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어떤 음악이 잘 들리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술을 워낙 좋아했던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왜 술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알콜 중독자인 것 같거나 의존증이 있는 것 같아.” 그의 말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나는 왜 습관처럼 매일 술을 마시는 걸까?’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나를 위해 때때로 함께 술을 마셔주기도 했다. 하지만 술을 원래 매일 마시지 않는 그를 위해서라도, 나는 건강한 정신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언제나 나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잘해주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걸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챙겨주는 그에게 물어봤다.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 잘해주는거야?”

“그냥 챙겨주고싶어. 그리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가 고마웠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나에게 좋은 변화가 생겼고, 점점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어느 날, 그와 함께 제주로 놀러갔는데,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마치 납치당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멀리까지 달려온 곳은 ‘돌고래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이전에 제주에서 돌고래를 한 번도 못 봤다고, 꼭 보고싶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말을 기억하고 데려와준 것이었다. 하필 그날은 강풍이 불고 파도도 심해서 돌고래를 볼 수 없었다. 추울까봐 괜찮다고 하며 돌아가자고 내심 속상해하던 나를 보고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끈기 덕분에 나는 마침내 돌고래를 볼 수 있었고,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없는 감동이 밀려왔고, 기뻐하는 나를 보며 그는 더 행복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나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더 깊이 느끼게 했다. 그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었는데,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다. 그래도 그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더 재미있게 보낸 것 같아. 항상 고마워.“

“덕분에 돌고래를 처음으로 보게 됐어. 고마워.”

“덕분에 이런 맛집도 와보고 고마워.”

“덕분에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정말 좋다. 고마워.“

“덕분에 힘 안들고 편하게 집 왔네,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


떨어져 있으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재미있고, 이게 사랑일까?

확인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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