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호
가을 햇볕이 제법 따갑게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이 끝난 아이는 턱 끝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친구들의 뒤를 따라갔다. 초등학교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몇 차례 오르면서 아이는 친구들의 대화를 열심히 좇아갔다. 보청기를 사용하는 아이는 친구의 웃음소리와 입모양을 대충 맞춰보면서 웃긴 일이겠거니 짐작하며 따라 웃었다. 이윽고 ‘6학년 3반’ 표찰이 달린 교실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어라, 교실 안은 왠지 이상한 분위기였다. 교실 안의 다른 친구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혹은 자뭇 놀란 표정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며 무리를 형성하여 왁자지껄 떠들었다. 평소였다면 체육시간이 끝났으므로 체육복을 갈아입느라 저마다 바빴을텐데! 아이는 ‘누군가와 관련된 일이 있구나’ 직감하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 다들 무슨 이야기 하고 있는거야?”
대답하는 친구의 말이 빨라서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친구가 불쑥 끼어들면서 아이의 집중력을 흐트렸다. 동시에 여러 말이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는 누구의 입모양을 집중해서 봐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아이는 말했다.
“미안, 아까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래?”
이번에는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역시 말이 너무 빨라서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아이가 듬성듬성 들은 단어들로 끼워맞추며 문맥을 파악하려 애쓰던 찰나에, 한 친구가 말했다.
“너는 몇 번을 말해야 듣는거야! 이 이야기는 저번에도 했던 이야기잖아. 어휴 답답해.”
아이는 간간이 들은 단어들이 모두 생소했으므로 분명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답답해’라는 말이 바위처럼 아이의 머릿속에 쿵! 떨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급격하게 차가워지면서 잘 벼른 칼로 가슴을 난도질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피를 질질 흘리는 채로 아이는 남은 수업을 모두 듣고 종례하고 집에 갔다.
집에 도착해서 밥을 먹은 아이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었다. 몇 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시간이 흐르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이윽고 사위가 어두워지자,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책상 앞으로 나가 한문 공책을 펼쳤다. 한자를 여러번 쓰는 숙제를 하기 위함이었다. 계속해서 한자를 써내려가다가 어떤 글을 썼다.
'학교 가기 싫어. 나는 혼자야.'
글의 주변으로 아이의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지나온 나날을 생각했다.
아이를 처음 보는 동급생들은 발음이 이상하다며 놀렸다. 처음으로 마음을 연 친구에게 비밀을 공유하듯이 남몰래 보여준 보청기는 다음날 반 아이들이 모두 아는 소문의 중심이 되었다. 한 친구가 차갑게 돌변하고 멀어지고 난 후에 다른 친구를 통해 ‘아이가 번번이 자신의 말을 듣고도 일부러 무시한다’며 오해한 사실을 알았다. 아이는 정작 그 친구가 말하고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흘러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또 과거의 짝꿍이 방귀를 뀌고 아닌 척 아이를 지목했음에도 그 사실을 몰라서 영문도 모르고 학기 내내 ‘더러운 애’라는 누명을 썼었다. 아이는 항상 듣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으며 나중에서야 누군가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았으나 해결할 기회를 놓치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그때마다 가슴 속에 무언가가 빈틈없이 꽉 차고 부글부글 끓어오르곤 했다. 마치 아이가 내딛고 있는 땅이 무너져 깜깜한 지하로 떨어지면서 숨 막히는 어둠에 잠기는 듯 했다. 이 감정은 여러 말소리가 동시에 오가는 대화 속에 있을 때 극한에 치달았다. 재잘재잘 떠드는 음성들 속에서 아이는 내용을 파악하려고 입모양을 눈으로 바쁘게 좇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점차 대화에서 소외되고 친구들 옆에서 멍 때리다가 수업 시간 종이 치면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이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쉬는 시간이 될 때면 정체 모를 감정에 허덕이곤 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몇 번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이 감정을 많이 느꼈다. 해가 지날수록 더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더욱 아득한 지하 속으로 존재가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를 쳐봐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어둠이 익숙해질 무렵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만난 동기에게서 관계에서 기인한 고독에 대한 고민을 듣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밝고 외로움이라고는 모를 것 같아서, 내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너랑 이야기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기분이야.”
아이는 그제야 지난 날 자신을 갉아먹어온 감정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외로움’이었다. 그 정체를 깨달은 순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외면하려고 했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실체화되어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학창 시절이 내내 외로웠다. 다수가 청인인 사회에서 나 혼자 농인이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슬펐다. 아무도 내 심정을 이해하지 않았고, 어긋난 소통으로 인한 오해에 발버둥 치는 일이 매우 고독했으며, 모두 다 아는 진실을 나 혼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에 떨던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무리에 속하고 싶어 밝은 척하고 웃음을 가장해왔음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예상외로 마음은 더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지 않았다. 대신 튀어나온 돌부리 하나를 잡고 매달려 있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시야 위로 마침내 고독을 걷어낸 동기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 다시 살아날 방도를 찾은 기분이었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어쩌면 외로움 덕분에 외롭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내가 외로움을 느꼈으므로 소외당하는 다른 이가 있음을 기민하게 느끼는 능력이 생겼다. 상대의 얼굴 너머로 보이지 않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저도 모르게 체득한 배려와 통찰력이 아이를 더 이상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외로움은 또 다른 외로움을 알아보고, 위로하고, 감싸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