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박자는 네가 제일 정확했어.”
나는 농인이다. 건강하게 태어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귀여운 네 살쯤 어느 날, 갑작스런 고열로 며칠을 크게 앓았다. 열이 가라앉을 무렵, 부모님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불러도 내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에서 진단 받은 결과, “고열로 고막이 손상되었습니다.” 그 순간, 부모님은 온 세상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보다 4살 많은 우리 언니도 나와 같은 이유로, 청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그때부터 ‘보청기’ 라는 작은 기계가 내 삶에 들어왔다.
보청기를 끼면 소리는 들린다. 하지만 그 소리가 무엇인지, 또 그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까지 알기란 쉽지 않다. 사람 목소리도, 바람 소리도, 차 소리도 한꺼번에 섞여 들어오니 이게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냉장고가 웅웅거리는 건지 헷갈릴 때도 많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정확히 알아 듣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농인이라고 다 같은 농인은 아니다. 누구는 나처럼 조금 들리고, 누구는 훈련을 통해 잘 알아 듣고, 누구는 전혀 듣지 못하고, 누구는 입모양으로 소통하고, 누구는 수어로 이야기 한다. 들리는 데시벨의 범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듣는 능력도, 소통 방식도 정말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와 손잡고 언어치료 센터에 꾸준히 다녔고, 집에서는 엄마가 쉬는 날 없이 발음을 가르쳐 주었다.
‘마’, ‘바’, ‘파’ / ‘자’, ‘차’ / ‘아’, ‘하’ / ‘카’, ‘가’
비슷한 입모양과 소리를 구분해 정확히 말할 수 있도록, 엄마는 내 옆에서 수없이 반복해 알려주었다. 나는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과 사교성 덕분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렸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잘 해낼 거라 믿었고, 일반 학교에 보내 주었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나는 새로운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다. 그렇게 청인의 세상 속에서도 잘 적응해 나갔다.
잘 들리지 않는 대신, 나는 보는 것에 더 집중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입모양과 표정을, TV에서는 배우들의 연기하는 표정과 제스처를, 가수들의 감성적인 분위기와 춤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들리지 않아도, 눈빛과 몸짓만으로 전하려는 감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표정만 봐도, 지금 재밌는 건지, 지루한 건지 금세 알아챘다. 그렇게 나는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정의 언어, ‘표현’이 좋았다. 눈빛과 몸짓에 담긴 마음을 읽는 데 익숙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기와 춤을 좋아하게 됐다.
‘음악캠프’, ‘뮤직 뱅크’, ‘인기가요’ 를 보며 춤을 따라 추고, 드라마 속 배우들의 손끝 연기까지 따라 했다. 전화기를 잡는 손가락, 고개를 기울이는 각도까지.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고, 상황극처럼 선생님이나, 임산부 흉내를 내며 과장된 연기를 하곤 했다. 다양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따라하면, 친구들이 “똑같아!” 하며 깔깔 웃었고,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하교 후에도 집에 가면 거울 앞에서 춤을 추고, 연기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적는 설문지를 받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탤런트, 가수’ 라고 적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말했다.
“네가 말도 잘 못하는 게 무슨 가수냐”
그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아, 나는 가수가 될 수 없는 건가? 농인이라서? 불가능한 거구나…’
그날 이후, 나는 장래 희망을 솔직하게 적을 수 없었다. ‘선생님, 간호사’ 같은 흔한 직업은 아무렇게나 적었고, 진짜 내 꿈은 조용히 마음속 깊숙이 숨겨 두었다. 나는 손으로 하는 일을 잘했다. 잘 안 들리는 대신, 보고 따라 하는 것은 능숙했다. 얼마나 잘 봤냐면, 음악 시간에 장구 치는 연습을 했을 때 친구들은 오로지 소리만 듣고 장구를 쳤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장구를 어떻게 잡고, 어디를 치는지 눈으로 따라하며 연습했고, 유일하게 정확하게 칠 수 있었다.
그만큼 나는 ‘보는 것’에 강했다. 그래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예쁘게 꾸미고, 그리고, 글을 쓰는 걸 참 좋아했다. 긴 머리로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해보거나, 요리를 하는 일도 즐거웠다. 손재주가 많다는 건 나의 강점이었고, 결국 그 재주를 살려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수많은 머리를 만지며 바쁘게 일하던 어느 날,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난파’라는 수어 창작뮤지컬을 올리는데 오디션 공지가 떴더라. 네가 생각나서 연락해 봤어. 관심 있으면 한번 신청해 봐.”
두둥.
그 순간, 이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진짜 꿈은 마음 한구석에 가둔 채 애써 외면해 왔는데… ‘무대 위에서 수어로 뮤지컬?’ 어차피 청인 세상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라며 늘 스스로 선을 그어왔지만, 이번은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이 기회로 한번 해볼까?’ 떨렸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라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그 떨림이 싫지 않았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 신청을 했고, 곧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드디어 대망의 오디션 날. 실감이 나지 않아 심장이 요동쳤다. 온 세상의 악기들이 한꺼번에 연주되는 것처럼, 가슴이 쿵쾅쿵쾅 요란하게 울렸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고 새로운 문을 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섹시한 안무로 춤을 췄다. 처음 보는 오디션치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고, 기분 좋게 퇴장했다.
‘합격입니다. 다음 일정은 …’ 합격 통보 문자였다.
나에게도 새로운 문이 열리는구나. 절대 이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진짜 내 꿈. 작지만, 그 꿈을 향한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매주 금, 토, 일 저녁마다 연습이 있었다. 갈 때마다 행복했다. 예전처럼 친구들 앞에서 장난으로 흉내 내던 것이 아니라, 이제는 대사를 가지고 수어와 감정을 담아 연기해야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시나리오를 이해하고, 내 캐릭터를 분석하고, 대사를 외워 수어로 번역했다.
장면마다 동선을 익히고, 반복해서 연습했다. 처음 무대 연기를 하다 보니 관객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더 재미있었다.
마침내 공연이 끝났다. 가슴속은 벅찬 감정으로 가득 찼다. ‘이게 꿈꾸던 순간이구나.’ 무대 조명이 뜨겁게 내리쬐고, 객석에는 환한 얼굴들이 가득했다. 첫 공연이 끝난 후에도 가슴속의 열기가 식지 않았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공연, 환호와 박수, 무대 위에서의 짜릿한 순간들. 모든 것이 꿈만 같았고, 그 꿈을 다시 꾸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첫 무대의 감동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두 번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처음과는 또 달랐다. 이번에는 안무와 음악 중심으로 구성된 시나리오였고, 감정보다는 리듬과 움직임이 더 중요한 공연이었다. 나는 새로운 음악의 박자를 익히는 데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들리는 소리만으로는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게는 보고 익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수없이 반복하는 연습만이 답이라는 것. 그래서 더 집중했다. 음악이 흐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박자를 세고, 몸으로 리듬을 익히며 반복해서 동작을 맞췄다.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혼란스러웠지만, 다시 반복했다. 같은 농인 배우 중 한 명은 음악을 듣는 청력이 뛰어났다. 그는 박자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고, 몸짓 하나하나가 음악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나는 그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했다.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박자를 탈 수 있다면. 음악을 듣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남몰래 운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원하는 만큼 되지 않는 날이면 답답함이 몰려왔다. 아무리 반복해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않을 때면 속상했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해내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청인들로부터 외로움을 충분히 많이 느꼈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농인에게는 그 외로움이 더 깊고 컸다. 공연을 앞두고, 우리 언니에게 울면서 고민을 털었다.
“나도 그 친구처럼 잘 듣고, 자유롭게 춤을 추고 싶어…”
그래도 꾸준히 연습해 온 만큼, 잘하자는 마음으로 공연 무대 위를 준비했다. 음악이 딱 시작되면 바로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지금이다! 그렇게 관객 앞에 나갔다. 긴장한 채로 음악에 연기와 안무까지 신경을 쓰느라 주마등처럼 정신없이 지나가고 공연이 끝났다. 그래도 성공적으로 마쳐서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숨을 내쉬었다. 공연을 본 우리 언니가 말하기를…
“그 친구처럼 음악을 가지고 놀기 어려웠겠지만, 박자는 네가 제일 정확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남몰래 괴로워하며 외로이 싸웠던 나 자신이 떠올랐고,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울컥했다. 그리고 우리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박자를 어떻게 연습한 거야? 박자 맞게 정확하게 잘했더라.” 힘들었던 그 시간이 결국 나만의 방식으로 결실을 본 것 같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