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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일 Nov 06. 2023

우정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여행 계획 세우다가 10년 지기 친구랑 절교했습니다


10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으니 정확하게는 11년. E는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스물이 되고 갔었던 일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고 우리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막연하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재 나는 회사를 퇴사한 지 6개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과 다소 미적지근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 E는 회사원. 연차까지 썼다고 말했다.


카페에 만나서 어디를 가고 싶은지 의논했다. 국내는 많이 가봤으니 해외로 가보자, 이는 공통된 의견. 나는 퇴사 후 동생과 일본 여행을 다녀온 상태여서 일본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고, 홍콩에 가고 싶었다. E는 몽골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별과 사막을 보는 게 로망이라면서. 몽골?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여행지였다. 자연에서 오는 아름다움 보다는 사람과 도시 구경을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어서. E는 홍콩 비행기표는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외 여러 여행 후보지도 얘기했지만 결국 몽골로 결정했다. 항공, 숙박, 식비, 가이드 비용까지 포함된 패키지 비용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얘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고등학생 때 자주 가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여행 얘기를 더 해야 하니 다음 약속도 잡았다.


분명히 얘기하자면 나는 몽골에 대한 로망이 없지만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것도 아니다. 내가 의의를 둔 것은 우리가 오랜만에 함께 여행을 간다는 점이다. 백수 기간이 길어지며 잔고가 0일 때가 잦고, 얼마 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적금도 깬 지 오래지만. 리프레쉬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여행지에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던 것은 만나서 대화했던 방식이었다. E는 의견을 조율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 예상했는지, 바로 결정이 돼서 놀라고 신나했다. 거의 E가 원하는 방식의 여행으로 흘러가게 되었으니. 나는 웬만하면 OK 해버리고 마는 성격으로, 몽골 여행 자체에 큰 기대가 없으니 크게 내세우고 말 것도 없었다. 또한 경주, 전주, 홍콩⋯ 뭔가를 제시하고 내 생각을 말해도, 본인이 관심이 없으면 뚱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E의 태도에 지레 내가 의견이 빨리 취합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다소 몽골이라는 여행지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나는 침묵 앞에서, 그래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는 건 좋을 것 같다고 말했고, 그제야 대답이 돌아왔다. 맞아. 그래서 진짜 너무 가고 싶었어.


두 번째 만남은 일주일 만에 이루어졌다. E는 물론 나도 집순이라 계절이 바뀔 때쯤 보곤 했으니 굉장히 빨리 만났다. 몽골 여행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는 E는 평소와 다르게 주도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러니 크게 이의를 제기할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퇴근 후 만난 E와 저녁을 먹고 내 집에 가서 간단하게 맥주를 마셨다. 


"네이버에 검색해서 나오는 패키지여행보다는 현지 여행사 패키지가 더 좋은 것 같아. 일정도 그렇고."


갑자기 동행을 구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렇게 할 경우 패키지는 4~6인 정도로 구성되며 비행기표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40~50 전후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불쑥 피곤해졌다.


"여행사에서 가는 패키지가 더 편하지 않겠어?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가야 하는 거고.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아질 텐데. 만약 그러면 너가 더 신경 써야 해. 괜찮겠어?"


뚱. 

E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유해 준 동행을 구하는 글을 다시 봤다. 27살 여자, 계획을 거의 짜두고, 현지 여행사와 컨택해서 어느 정도 견적도 봤고, E의 연차와도 딱 맞는 그런 글이었다. 대략적인 일정을 살펴보다가 순간, 


'뭐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나? 나는 특별히 보고 싶었던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귀찮은 건 싫다고 얘기했고. 어차피 얘가 다 감수한다면야.'


"아, 이건 고비 사막을 가네. 그래서 좋다."

"그치? 그래서 내가 이걸 가자고 하는 거야."


이제야 원활하게 이어지는 대화.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본래 충동적인 성향이 있지만 취기까지 덧붙어 망설임이 없었다. 할인쿠폰을 만들기 위해 내 계정으로 새로 아이디를 만들고 E의 카드로 결제해 바로 이체까지 완료.


E는 너무너무너무 신났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늘 설레고 좋으니까. 나도 나쁘지 않았다.


여행 단톡방에 초대됐다. 27살 여자 둘. 25살 남자 하나. 그리고 우리. 사람이 더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있는 상황. 나는 몽골 여행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시작하기 전 검색으로 불안을 다스리곤 했다. 나잇대가 비슷한 사람끼리 가게 되니 조용한 여행보다는 서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되겠거니 싶었다. E는 이런 것을 좋아했던가? 내가 선호하는 여행 방식은 아니었지만. E가 가자고 한 거였으니까.


왜 그렇게 E에게 맞추는가? 사람들에게 그냥 맞춰주고 갈등 상황을 피하고 싶다. 이게 내 기본적인 성정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E에게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너그러웠다. E는 굉장히 마른 체형에 자주 골골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아파서 집에서도 많이 챙겨주고 사랑 듬뿍 받은 막내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애교 있는 성격으로 잘 치댄다. 나는 장녀 스타일로 먼저 다가가기보단 받아준다. E가 먼저 팔짱을 끼거나 조잘거리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좋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잘 되지 않을 때 표정에 바로 드러나는 것도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생각하는 대로 표정에 드러나는 편이니까. 그런 것들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정도로 E가 좋았으니까. E는 나름대로 자기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잘해주었고 이를 꼭 티를 냈다. 칭찬받길 원하는 아이처럼. 


여행을 가기 전에 많은 것을 골라야 했다. 어떤 패키지여행을 갈 것인가, 1안과 2안 중에서 어떤 것이 좋은가, 숙소는 어떤 것이 좋은가, 공금, 사전에 만날 것인지, 만일 혼숙을 하게 될 가능성에 대하여⋯ E는 원하는 것이 명확한 인간이었고 필요하다면 이를 단톡방에서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떤 얘기를 하기 전 개인톡을 자꾸 나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카톡을 자주 많이 할 수 있는 아이였구나⋯ 새로운 면을 알게 됐다. 본인이 가자고 한 것에 비해 불평이 많았다. 


나는 그냥 우리끼리만 다닐래. 별로 안 친해지고 싶은데.

숙소 나눠서 자면 누가 혼숙하는데? 나는 절대 남자랑은 같이 안 잘 거야.

저 사람 도대체 왜 그러는데?


단톡방에서 여러 결정을 내리는 과정도 귀찮았지만 E의 의존적이면서 폐쇄적인 성격이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문득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로 가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일본 여행을 갔던 스무 살. E의 엄마는 우리를 공항까지 태워다 줬다.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조수석에는 E의 언니도 타있었다. 그들은 내게 E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스물인데. 그리고 이제는 스물여덟이다. 곧 서른.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적극성에 이질감을 느꼈다. E에게는 친구가 많다. 그동안 우리가 여행을 가지 않았을 뿐이지 E는 친구들과 자주 여행을 다녔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며 회사를 다니고, 취준을 하는 친구들에게는 얘기하기 어려우니, 시간이 프리하다고 말하는 나는 여행 메이트로 제격이었을 것이다. E의 집안 분위기는 물론 E의 성격 상 혼자 몽골에 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일 테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몽골에 가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었다. 엄청 좋은 것도 아니지만.

정말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었으니까.

여행에 다녀온 후 반년 정도는 안 보게 될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게 정말 좋은 관계니?"


몽골 여행을 가게 될 것 같다고, 미적지근하게 얘기하는 내게 엄마가 물었다. 엄마는 상담 일을 하고 있고, 때로 편하지 않은 질문을 집요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이미 항공권도 내고, 예약금도 냈다고 말했다. 싫은 건 아니라고. 가면 어떨지 모르니까. 엄마는 계속 질문했다.


"너가 정말 가고 싶니? 그럼 가는 거야. 그런데 돈도 들고, 시간도 드는데, 너 돈 많아? 걔는 회사 다니는데 너는 이제 일 구해야 되잖아."

"가고 싶어서 간 여행에서도 싸우는 게 여행인데 지금 이렇게 좋은 게 없어서 되겠어?"

"돈이 중요하니? 인생에서 이건 별 게 아니야. 선택할 수 있는 문제야."

"끌려가는 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 거야. 왜 걔가 하는 말을 다 받아주는데?"

"사람들이 신경 쓰여? 그 사람들이 욕하면 뭐?"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사실은, 별로 안 가고 싶어. 가도 싸우게 될 것 같아. 내가 받아줘야 되니까. 내가 그런 부분에 대해 말해도 걔는 몰라. 일본 여행에서 싸운 건 내가 일방적으로 말을 안 했기 때문이래. 자기는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는데. 나도 그때 미숙하게 행동한 건 맞지만 되게 스트레스 많이 받고 힘들어서 그런 거였는데. 지금도 벌써 이러는데. 수동적으로 굴면서 원하는 것은 다 얻어내는, 응석 부리는 태도도 꼴 보기 싫어. 내가 걔 언니냐고. 친동생한테도 안 그러는데. 


다음 날 E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까지 쓴 글 정도로 솔직하게 쓰진 못했다. 예전에 신청해 놓은 강의를 들어야 할 것 같다고. 갑자기 미안하다고. 다음이라도 여행을 갈 수 있으면 가고, 너라도 가고 싶으면 갔다 오라고.


"그렇게 전전긍긍하지 마. 세상에 큰일이 얼마나 많은데. 만약 여기서 얘가 뭐라 그러잖아? 그럼 여기서 끊길 인연인 거야. 얘는 너를 배려 안 하는데 너는 왜 얘를 배려해 줘야 해?"


몇 시간 후 답장이 왔다.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10년 동안 쌓아온 데이터로 충분히 예상했다.  


-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놀라운 건 아니었지만 허무했다.


사람은 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곤 한다. 나도 그렇다. 나는 만약(물론 이런 가정 자체가 의미 없다면 의미 없는 거지만) 여행 계획이 파토가 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먼저 이유를 물어볼 것 같다. 납득이 되든 납득이 되지 않든 설령 뒤에서 궁시렁거리게 되더라도 알겠다고 말할 것 같았다. 여행은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거니까. 정말 그곳이 가고 싶다면 혼자라도 가면 되니까. 아쉽지만 사정이 생긴 거니까. 출발 일주일, 3일, 하루 전도 아니고. 한 달 전이었다. 비행기 수수료는 내야 했지만.


그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기만 하는 답장을 보고 지체하지 않았다. 바로 단톡방을 나와버리고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어차피 여행을 떠났더라도 나는 보호자이자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했겠구나. 얘는 상대에 대해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구나. 새삼 알고 있던 사실이 다르게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고 장문의 카톡이 왔다. 나의 잘못을 논리 정연하게 적어둔, 미안한 마음도 사라질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지 아주 깔끔하고 완벽하게. 평소에도 이렇게 의견을 피력할 줄 아는 아이였나? 입을 꾹 다물고 착한 얼굴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아이는 허상이었나?


E는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나의 어렴풋한 예상이 맞아떨어진 게 개운하지는 않았다.


카톡 말미에 E는 환불은 너 알아서 하라고 써뒀다. E의 카드로 결제하고 내가 이체했는데, 그럼 수수료만 빼고 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깟 20만 원, 안 봐도 상관없는 돈이긴 했지만. 이성적인 척 굴지만 깔끔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E에게.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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