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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일 Nov 16. 2023

니트족과 프리터족과 히키코모리

하고 싶은 일과 돈을 버는 일, 그리고 노동

웹디자이너로서 일을 하지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그만둔 현재의 나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취준생? 백수? 사이버대학으로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고 있지만 사이버 대학생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 살짝 부끄럽다.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구시대의 가치관을 신봉하며 살아온,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는 아빠에게는 특히 더. 늘 잔소리다. 좀 있으면 서른이다. 빨리 일을 구해라. 그런데 장기적으로 오래 할 수 있는 정규직을 고민해라. 디자인은 젊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빨리 독립해라. 그런데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을 때 나가라. 이런 조건의 집은 피해야 한다… 등등. 양가적인 정보들이 한 번에 들이닥친다. 한 번도 자신의 믿음에 의심해 본 적 없는 아빠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충동도 사라진다. 꿈과 예술에 대해 공상하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항상 글을 쓰면서 살고 싶고 예술가로 살기를 소망한다. 안정적인 삶,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집을 구하고 가정을 꾸리라는 소리를 들으면 숨이 막히고… 당산역을 향하는 지하철 바깥으로 반짝이는 한강으로 뛰어들고 싶어 진다. 최근 예술도 노동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예술로만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거 해서 뭐 해 먹고살게? 장래희망을 말하던 어린 시절부터 듣던 소리. 처음에는 주변이었지만 이제 내 안에서도 불신과 불안, 걱정이 자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어른이라면 어른인 걸까…


철이 없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생에서 바라는 게 별로 없다. 나 혼자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 가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하고 싶은 것 정도이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는 웹디자이너 업무를 그만두게 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첫째, 디자인도 창작의 일종이다 보니 머리를 쥐어짜 내고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둘째, 발전하기 위해 지속해서 디자인이나 퍼블리싱 관련하여 공부를 해야 했는데 그 노력을 들이고 싶지가 않았다. 셋째, 안정성이 나를 게으른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재미가 없어지고 고통스러워졌다. 


스물여덟,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처음 하게 됐다. 아빠는 툭 그런 말을 했었다. 최저 시급 받으니까 힘들지? 빨리 직장 구해야겠단 생각이 들지? 그때의 나는 오히려 그동안 지내온 생활 중 가장 정신건강이 좋았다. 일단 착하고 나잇대가 비슷한 점주님을 만난 것도, 약간 몸을 움직이는 것, 테트리스 하듯 물품 정리를 하는 것, 손님들이 사갈 물건을 미리 예상해 보는 등등. 딱 아르바이트 수준의 책임감을 가지는 것도 마음이 편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풀타임을 일해도 웹디자이너로서 받는 월급이 비슷했기 때문에 차라리 시간을 더 늘려서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몸을 쓰는 직업은 나이 들어 못 한다고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 여행에 갔을 때 백발의 할아버지가 바코드를 찍어주기도 했다. 


이사를 하게 돼서 5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게 됐다.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중이에요,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어요, 얘기하고 실제로 몇 군데의 회사들에 지원하고, 면접 요청이 오기도 했으나 아직까진 계속 내 방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까 아빠는 나를 니트족이나 히키코모리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잡플래닛 1점대의 회사에 덥석 입사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와 다른 무게감이다 보니 더 조심스러워진다. 뭐, 그런 일련의 사고 과정을 아빠와 나눌 정도로 친하지 않으니… 나는 뉴스에 보도되는 취업포기자39 정도로 보일 수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다.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사니까. 그래도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언젠가는.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버는 일을, 좋아하는 일을 해쳐가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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