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솔트 Sep 23. 2024

티라미수케잌?T라미숙해!

T라고 생각해 준 아이들

"아 J 어머니시죠?"


모르는 번호.

하지만 학교번호로 추정되는 숫자들.

무엇보다도 오늘은 3월 2일 하교시간 직후의 시간이다.

어머니라도 부르며 전화를 걸 수 있는 곳.

나는 학교라는 것을 직감했다.


"네 J엄마입니다. J 담임선생님이실까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생님이 보고 계신 것도 아닌데 저절로 폴더 인사를 한다.


"선생님, J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요?"


선생님은 난처하시듯 고민하시는 듯 말씀을 바로 하시지 못하고 뱅뱅 말을 돌렸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역시 중학생이라 만만치 않나?

J가 뭔가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을까?

잠자고 있던 마음속 불안이가 회오리치며 날 뛴다.

선생님이 본론을 말하지 않는 짧은 순간 나는 여러 가지 부정적 걱정들이 쓰나미처럼 머리를 가득 채우고 만다.


"J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J에 미리 알고 있어야 할 상황이나 주의할 것들이 있을지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나도 어렵게 입을 뗐다.

"J가 조금 다른 아이들과 다르죠? 선생님께서 당황하실만한 행동을 J가 했을까요? 규칙이나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나 아니면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 들이라던지요. 아니면 말실수라던지요." 

"아... 어머니 J는 규칙, 예의 없는 행동을 또래남자친구들보다 잘 지키고요. 수업시간에도 잘 있습니다."

"그럼 어떤?..."

"다만..."

선생님 입에서 '다만'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긍정문을 부정문으로 바꾸는 불행의 열쇠 같은 말

"J가 쉬는 시간에는 혼잣말을 하면서 복도를 특이하게 걸어 다니는 데 짖꾸은 아이들은 놀릴 수가 있을 거 같아서요. 제가 특수교육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아 네 J가 초등학교 때 내내 특수학급에 있었어요. 중학교 때는 다시 특수학급을 들어가려면 지능검사 자폐검사를 해서 장애등급이 있거나 등급이 없는 친구는 특수교육청에서 따로 임상심리가에게 검사를 받아 그 조건에 맞아야 들어갈 수가 있는데 J는 여러 종류의 검사를 3번 했지만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특수학급에 배치되지 못했습니다.  "

나는 속사포랩을 하듯 지금까지 일들을 요목조목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했다.

J성향, 학습 수준, 현재 신체활동 범위,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주의를 어떻게 주면 더 효과적인지까지 원하는 모든 정보를 모두 모두 가감 없이 주었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J가 특수학급친구인 거 같은데 어머니인 내가 인정을 안 해서 안 간 줄 알았다면서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아서 선생님도 당황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J를 유심히 살피고 또래아이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하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나는 선생님 앞에서 점점 작아진다.

죄진 것도 아닌데 쪼그라든다.


길고 긴 선생님과의 통화가 끝났다.

나는 이제 다시 시작인 것 같아

눈물이 흘렀다.

다시 들어가 일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로 연신 세수를 했다. 

뜨거워진 눈뚜덩이가 좀 가라앉는다.






중1까지 J는 장애등급은 고사하고 특수학급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지능은 82로 지적장애로는 훨씬 넘는 점수 덕?이다.

그래도 무언가 확실히 눈에 띄었는지 

3월 2일 중학교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바로 전화가 왔다.

역시 학교에서 전화가 오니 트라우마처럼 불안이는 미쳐 날 뛰었다.


결론적으로,

중1 때 생활은 아름다웠다.

좋은 선생님 좋은 반친구들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룹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합창대회, 현장학습, 조별과제도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회였다.

합창대회에서는 가운데 서서 누구보다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는 J의 모습에 많이 컸구나 싶었다.

담임선생님도 J의 성실과 예의바름의 매력에 빠졌다며 J를 많이 칭찬해 주셨다.

일 년간 마음 편히 회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J의 1학년 담임선생님이셨다.


담임선생님은 젊은 30대쯤 되는 체육선생님이셨는데 적극적으로 J의 단짝 친구가 되어 주셨다.

쉬는 시간 , 점심 시간에 J를 불러 대화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젊고 멋진 남자선생님이라 그랬을까? 반아이들은 선생님을 많이 따르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중1 때 친구들은 J를 요즘말로 T라미숙 한 아이로 생각했다.

기안 84처럼 특이한 아이, 유니크한 생각을 하는 독특한 아이로 생각해 주었다.

경계선 아이들은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장점을 아름답게 봐주면 그것에 부흥하여 그렇게 행동한다.


그래서일까? 중1 때는 특수학급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반에서의 큰 트러블 없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유토피아적 생활을 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완전통합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초등학교6년 중학생활2년을 통틀어 가장 다름을 아름답게 인정한 시간이였다.


J의 특성상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을 잘 못한다.

가족 외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느 날 가족끼리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J가 "어 선생님이 여기나 오나?" 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선생님 이름이 허준호인데!!"

"헉 선생님 이름을 아는 거야?"

배우이름과 담임선생님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주입식으로 이름을 억지로 외우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외운 건 처음이지 싶다.

괜스레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에 울컥했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또 성장하겠지 

J의 속도에 맞게 자라가겠지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