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학폭을 진행하기로 했다.

1년이 지난 후 아픔을 다시 꺼내는 시간

by 핑크솔트

프롤로그를 쓸 당시 한창 학폭이 진행되고 있던 시간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도 넘쳐나는 분노의 감정이 절제되지 못했다.

나의 글은 학폭 가해자에 대한 비난, 그 부모에 대한 원망, 이런 사회구조에 대한 통탄함으로 가득 찼다.

글을 쓰면서 가슴이 다시 벌렁벌렁 되면서 나에 대한 2차 가해를 하는 것 같았다.

거진 한 해가 마무리가 되어가며 이 글을 계속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였다.

그럼에도 다시 쓰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 위로가 되길 바람이다.


그 당시에 학폭신청은 방학을 딱 2달 남겨두고 시작되었다.

J는 가해학생들이 처벌을 받고 그에 따른 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의중은 분명했고 우리는 학교에서 하라는 모든 지시사항을 따랐다.


아이가 완전통합반이어서 본인은 특수학급인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 했지만 특수학급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였으나 결국 우려대로 주홍글씨만 남았다.

가해학생은 더욱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놀렸다.


그 일을 통해 아마존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그때뿐이었다.

1학기를 내내 시달리고 2학기가 되어서는 교묘하게 아이를 괴롭혔다.

무리의 대장급 되는 아이는 좀 더 지능적으로 다른 아이를 시켜서 간접적으로 괴롭혔다.


일 년이 넘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보아도 아프고 쓰리다.

아이를 좀 더 빨리 그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담임은 학기 초 상담 때 가해자가 중2이라 조절능력이 어렵다고 했다.

학폭을 진행하면 더욱 학교 다니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학폭 담당 선생님은 왜 이제야 학폭 신고를 했냐며 안타까워하셨다.

이렇게 명백히 피해자 가해자가 분명할 경우엔 빨리 신고할 수 록 더 나은 상황이 된다고 하셨다.

무지하고 용기 없고 게을렀던 엄마인 나를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상황이 진행되면 경계성 부모님들은 담임에게만 상담하며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라서 담임은 얼마나 애정을 담아 학교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 아이를 주시하며 관찰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적다.


그 말인 즉 아이가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는지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잘 아는 것은 같은 반 친구들이다.


그렇다면 같은 반 아이들의 의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 이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