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대학원의 사람들과 네트워킹
인문대 대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학부 때도 만났던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임교수님들, 강사들, 조교들, 조교들이랑 수다 떨며 다니는 좀비들(?). 그런데 이제 대학원에 가면 그 사람들과 더 밀접한 관계로 바뀌게 되죠. 전임 교수님 중에 한 분은 지도교수로 진화!, 강사, 조교, 좀비들은 저의 선배로 진화합니다. 오늘은 이런 대학원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대학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는 대학원에서의 네트워킹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했고, 신입생 세미나 때에 제가 느꼈던 대학원 선배들의 모습이 각자도생같이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막상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니, 이곳에서의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복잡했습니다.
보통 대학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들은 석사 동기들이고 다음은 자신의 분과 선배들입니다. 분과가 달라도 대학원의 같은 시간을 걷는 동기들, 같은 시대나 주제를 연구하는 분과 사람들과 자료를 공유하고 수업, 세미나를 함께 준비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좁디좁은 연구실에서 오랜 시간을 생활하는 경우도 많으니 더 그렇고요.
인문대 대학원에서는 여기에 더해서 다른 분과의 선후배들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통의 공대 대학원들은 자신이 속한 랩실의 구성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많은 시간을 한 공간에서 근무하고,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문대 대학원에서는 다른 분과의 수업을 종종 듣습니다. 여기서 다른 분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죠.
또한 다른 분과 교수님의 수업에서 태도, 발표문의 수준은 곧 내 평판이 됩니다. 이런 수업에서 일련의 과정들을 해당 분과의 선배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분과의 선배들과 동기일 수도 몇 년씩 대학원 생활을 같이 해온 동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곧 내 분과 선배에게 나에 대해서 얘기하죠. 이제 막 학교에 들어왔거나 공부한 지 1년도 안된 석사 1~2학기들과 몇 년씩 함께 보낸 타 분과 박사 과정생들. 누구의 말을 분과 선배들이 더 신뢰할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교수님들도 말은 안 하시지만 이러한 평가들을 다 듣고 있습니다. 박사 고학기차, 박사 수료생들 중에서는 교수님들이 신뢰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들, 여러 강사님들이 얘기하는 것들은 지도교수님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렵고 높은 인간관계의 벽은 역시 지도교수님입니다. 저는 석사는 운이 좋아서 4학기 때에 주제를 잡았고, 5학기 때 졸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박사를 가겠다고 했을 때, 교수님께서 하신 서슬 퍼런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석사 논문 최종본을 가져다 드리면서 박사를 가겠다고 선언했더니 잠시 침묵하시던 지도교수님께서 '박사? 그러면 논문이 이 수준으로는 안 되는데?'라는 한 마디를 남기셨죠ㅜㅜ
다행히 저는 무사히 석사 졸업을 하고 박사에 들어갔지만 그날 이후로 저는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정말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박사니깐 더 잘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항상 머릿속에 있었고요. ‘교수님의 한 마디’가 내 연구 주제, 대학원에서의 방향을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지 절감했습니다. 사학과에서 지도 교수님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내 연구의 방향타이자, 때로는 내 진로까지 결정짓는 존재인 것이죠.
제가 다닌 학교의 사진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교수 연구실의 복도를 지나서 지도 교수님의 방으로 갈 때는 지금도 여전히 두근거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으면 괜찮아지려나... 하는 마음이네요.
학회에서의 네트워킹도 빼놓을 수 없죠! 인문대 대학원생에게 학회는 단순한 공부의 장이 아니라, ‘인맥의 장’이기도 합니다. 타대학의 교수님들, 대학원생들과 만나서 인사도 하고 비슷한 주제를 공부하는 타대생들과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게 되고, 자료를 구하거나 할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다만 그들도 결국 같은 소속을 가진 것이 아닌 같은 공부 분야를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논문도 쓰고, 학회에서 좋은 발표도 해야만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더 찾아주는 것이죠. 그래도 내가 나를 증명하고 그들 사이에 당당하게 섰을 때에는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인맥들이 되어줄 겁니다.
인문대 대학원생의 인간관계는 때로는 경쟁적이고, 때로는 따뜻합니다. 논문 주제나 자료 해석을 두고 의견이 충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수업 중에 칭찬을 받는데 누군가는 혼나기도 합니다. 나보다 1학기 늦게 들어온 후배가 먼저 졸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서관 앞에서 커피 한 잔, 대학 근처 술집에서 술 한 잔을 나누는 동료들입니다.
고독한 연구실에서 홀로 씨름하다가도, 누군가와 함께 웃고, 때로는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 그게 바로 인문대 대학원생의 인간관계이자, 우리가 이 좁은 학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사진 출처
대학원 연구실 사진: https://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3768
교수연구동 사진: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0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