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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대학원 첫 발표는 어떻게 할까?

대학원생이 가장 긴장하는 첫 발표

by cm

대학원에서 떨리는 순간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수업을 들어가는 매순간순간 떠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다행히 저는 그 정도로 많이 떤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떨었던 순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떨리고 긴장했던 대표적인 순간 중에 하나가 대학원 수업에서의 첫 발표였죠. 대학원생의 인생 첫 수업 발표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같이 적어보겠습니다!


대학원에서 저의 첫 발표는 고대사 수업 때였습니다. 인문대 대학원 수업에서 발표는 학부생 때 했던 발표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학부생 때의 발표가 교수님이 수업을 하는 과정에서 '저 이만큼 공부했어요!'라고 하는 걸 발표하는 느낌이라면, 대학원생의 발표는 나의 발표 내용이 오늘 수업의 일부를 책임지고 이끌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통 대학원 수업에서는 석사 1학기에게 2~3주차 발표를 맡기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생 또는 석사 3~4학기들이 2~3주차의 발표를 맡게 됩니다. 선배들이 하는 것을 보고 석사 1학기들이 배워서 발표를 해보라는 의도이죠. 그런데 문제는 보통 교수님들이 선배들 발표에서도 엄청 피드백을 세게 하십니다. 보고 배우는 것보다 쪼는 게 더 많죠ㅎㅎ...


선배들이 발표 때마다 고생하는 걸 보면서 저도 정말 준비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격상 밤을 새우면 공부가 더 안 되는 스타일이라서 미리 시간을 정해서 꼬박꼬박 공부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첫 발표를 준비할 때는 정말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열심히 준비를 했죠.


첫 발표문.png 나름 열심히 했던 첫 발표문

당시 제가 했던 발표는 고구려 동천왕대 관구검의 침략을 분석한 연구들을 정리하고 비평하는 연구사정리였습니다. 그래서 논문들을 열심히 읽고 분석했었죠. 그렇게 발표문을 다 쓰고! 발표날이 밝았습니다. 발표 당일, 수업실의 공기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PPT를 띄우고, 준비한 원고를 손에 꼭 쥔 채 발표를 시작했죠.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긴장한 나머지 반말로 발표를 했죠ㅎㅎ...


발표를 마치고 나니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습니다. 그때부터 진짜 ‘시험’이 시작되었죠. 교수님과 선배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논문의 신뢰도는 어떻게 판단했나?”, “그래서 이전 연구에서 미흡한 점이 도대체 뭐야?”, “비평이라고 하는 얘기들이 기존의 다른 논문에서 다 얘기한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 등등. 거기다가 완전 기초적인 한자도 제가 틀리게 적어뒀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준비한 답변을 더듬더듬 내놓다가, 한자 틀린 거를 지적받으면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결국 “죄송합니다. 더 공부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죠.


발표가 끝난 후, 동기와 선배들이 "고생 많았다"라고 해줬지만 귀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발표도 이어졌지만, 저는 발표 내내 머뭇거렸던 내 모습과,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던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죠.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동기들이랑 한 잔 하러 가면서 열심히 한탄을 하다 보니 ‘나는 정말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석사논문 별거 아니니깐 걱정마라는 선배들의 위로 아닌 위로도 전혀 들리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저의 우당탕탕 첫 발표는 끝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발표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날의 좌절이 내게 가장 큰 배움이 되었더라고요. 그날의 기억들과 지적들이 저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고 나아가게 만드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나름 했었거든요. 지금은 제가 그때 제 앞에 있던 선배들의 자리에서 석사 1학기생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대학원에서의 첫 발표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약간의 자존심 상함이 뒤섞인 통과의례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고 나니, 발표라는 벽이 조금은 낮아지죠. 그렇게 여러 번 수많은 발표와 토론, 논쟁을 거치고 나면 적어도 ‘처음’의 떨림을 이겨낸 나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인문대 대학원에서는 누군가의 첫 발표가 이어집니다. 그 떨림과 좌절, 그리고 성장의 순간이 쌓여서 결국 더 단단한 연구자가 되어가는 것임을 발표하는 모든 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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