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바깥의 수업
인문대 대학원생들은 수업이 끝나도 수업이 남아있습니다. '스터디'라는 이름의 수업이죠. 작게는 세부 분과의 선, 후배들끼리, 크게는 여러 분과의 사람들이 모여서 수업 때는 하지 않았던 다양한 공부를 합니다.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수업보다 더한 고통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순간이 되기도 하죠. 오늘은 이런 인문대 대학원생의 스터디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사학과 대학원에 들어오면 ‘스터디’라는 단어가 일상처럼 따라붙습니다. 학부 시절에 스터디라고 이름 붙이고 친구들과 시험 전에 모여 요약정리를 같이 하고 밤샘하면서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문대 대학원 스터디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르죠. 논문 읽기, 사료 강독, 수업 발표 준비, 석사 논문 준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공부를 하는 게 대학원 스터디의 본질입니다.
스터디는 대개 같은 분과의 선,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서 꾸려집니다. 석, 박사 가리지 않고 누군가가 '후삼국시대 사회에 대해서 해보죠'와 같이 하고 싶은 주제를 얘기하면 참여한 학생들이 해당 주제의 논문들을 읽고 연구사 정리를 한다거나 간단한 주제 발표를 합니다. 발표가 끝나고 나면 나머지 멤버들은 질문을 던지면서 토론을 시작하죠. 그런 과정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과 비판적 시각을 점점 키워낸답니다.
대학원 스터디의 백미는 역시 '석사 논문 발표'입니다. 많은 석사생들이 자신의 석사논문 주제를 잡는 것을 어려워하고, 주제를 잡았더라도 작성하는 것을 힘들어하죠. 석사와 박사의 이름값 차이는 굉장하지만 석사논문의 난이도가 박사논문 못지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석사논문이 자신의 실력을 0->1로 만드는 것이라면 박사논문은 1~2->10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1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공감하실 겁니다.
석사과정생들은 하고 싶은 주제를 연구계획서로 작성해서 들고 오거나, 지도교수님이 추천해 준 주제를 계획서로 써오기도 합니다. 석사수료생들은 자신이 쓰고 있는 석사논문을 가져오기도 하죠. 저도 처음 석사논문 초고를 쓰고 스터디에 가져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칭찬을 받을까? 아니면 혼이 많이 날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들어었죠ㅎ
석사 논문 발표를 하고 나면 서슬 퍼런 박사 선배들의 피드백이 이어집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말투로, 누군가는 냉정한 말투로 말하지만 말투와는 상관없이 저의 글에 대한 평가들은 날카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듣고 쓰다 보면 혼자서 이 글을 썼을 때에, 절대 얻지 못했을 통찰, 방향성, 확장성 등이 생겨나게 된답니다.
스터디에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발표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 이야기가 오가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죠. “요즘 논문이 안 써져서 힘들다”, “지도교수님 피드백이 너무 매서워서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하소연에, 석사들은 “나도 똑같다”, 박사들도 "우리도 그때는 같았다"와 같은 공감과 위로를 건네기도 한답니다. 스터디가 끝난 뒤에는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거나 카페에서 남은 이야기를 이어가며 조금씩 선, 후배 사이의 우정이 깊어지죠.
물론 스터디가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바쁜 일정에 빠지기도 하고, 준비가 부족한 날에는 미안함과 눈치가 뒤섞이죠. 석사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하면서 글을 제대로 못써오고, 박사들은 내가 너무 석사생들을 혼내나 싶은 생각도 합니다. 때로는 박사생들이 글을 제대로 못쓰기도 하죠.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공부하는 과정의 일부임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연휴의 하루인 오늘, 어떤 대학원생들은 스터디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논문을 발표하고, 누군가는 사료를 해독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부딪치고 있겠죠. 그렇게 함께 공부하는 시간들이 쌓여, 결국 더 단단한 연구자로 나아가게 되겠죠. 저 역시도 그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