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와 연구자의 어딘가
그동안 인문대 대학원생의 여러 가지 정보에 대해서 적어보았습니다. 오늘은 정보성 글보다는 저, 지인들이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다만 정보가 특정되거나 할 수 있으니 내용과 관련 정보는 조금씩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에피소드 주제들은 대학원생들의 근무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많이 봐주세요~
제 선배였던 A가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A가 근무했던 연구소는 근로 학부생 2명, 조교 A, 연구교수님과 소장님이 계셨습니다. 이 중에서 주 5일 근무를 하는 건 조교 A와 연구교수님이었고 연구소 업무의 대부분도 두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죠. 이런 소규모 구조의 연구소는 종종 있기 때문에 사실 인문대 대학원생에게 이 상황이 불편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익숙하다고 할 수 있죠.
문제는 A와 같이 일하는 연구교수님이 지나치게 깐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지 메일 같은 걸 보낼 때에 온점 하나만 빠져도 뭐라고 하시는 분이었죠.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연락하는 분이셨죠. 저희끼리는 "아니 집에 가서도 연구소 메일만 보고 계시나?"라고 하던 분이었습니다. A도 저희랑 술을 마시다가도 집에 가서 업무를 처리하고 그랬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퇴근 전에 A는 모든 메일을 다 처리하고 퇴근시간인 5시 전까지 연구소로 오는 메일이나 전화를 처리하려고 대기했습니다. 마침내!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나가 서울역으로 가서 대전으로 향했죠. A는 여자친구가 대전에 사는 롱디 커플이었습니다. 주말을 맞아서 여자친구를 보러 내려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대전에 가서 여자친구랑 즐거운 데이트를 하던 A. 그날 저는 친구들과 학교 근처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랑 술을 먹던 다른 친구에게 밤 10시에 A의 전화가 왔습니다.
"아... 나 지금 올라가는 중임. 인생 힘들다."
사정을 알고 보니 연구교수님이 밤 9시쯤에 연락을 해서 일을 시켰던 겁니다. A는 대전에 있어서 힘들다고 했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연구교수님이 닦달해서 결국 서울로 돌아온 것이죠. 관련 자료 등이 연구소와 A의 개인 컴퓨터에만 있었기에 대전에서는 처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특별한 케이스긴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일이 종종 겪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인문대 대학원생들입니다. 반대로 교수님들의 인정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동기인 B는 지도교수님 밑에서 학회 간사를 했습니다. 간사는 다양한 일을 하지만 주로 하는 것은 학회 입출금 내역 관리, 학회지 출간과 관련된 연락 담당입니다. 이 친구는 일을 꼼꼼히 잘하는 스타일이라서 교수님들이 많이 이뻐하셨습니다. 문제는 이뻐하는 만큼 이 친구에게 업무를 맡기는 양이 늘어난다는 거였죠.
덕분에 B도 꽤 힘들어했습니다. 자기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업무가 점점 늘어나니깐 당연한 일이죠. 업무가 많아진다고 간사 월급이 늘어나는 일은 물론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긴 기업이 아니라 대학원이니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학회 업무를 모두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학회 회의에서 자신이 겪은 업무 경험들을 바탕으로 교수님들께 조심스럽게 의견 제시도 했죠.
"B도 이거 연구자가 다 되었구먼. 허허."
같이 회의를 하시던 교수님의 한 마디에 B는 고생하던 게 다 풀린 거 같았다고 합니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논문이 빨리 써지는 것도 아니지만, 교수님들 칭찬 한 두 마디에 또 마음이 풀리는 것이 인문대 대학원생입니다.
이렇게 대학원생들은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뜬금없는 갑질에 당하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열정페이에 강요당하기도 하지만 연구자로서의 인정을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인문대 대학원생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