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과 학생 사이
오늘은 인문대 대학원 조교를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풀어보겠습니다. 조교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전에 적었습니다. 저는 인문대 대학원 조교의 여러 업무 중에서 교수님들의 수업의 출결과 운영 보조를 오래 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이런 수업 관련 업무에 대해서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실제로 업무를 하면서 겪은 일을 통해 인문대 조교의 일상을 살짝 봐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처음 조교 업무를 맡았을 때에 담당했던 수업 중 하나는 교양 과목인 ‘한국사 개론’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학생들이 수업 1, 2일 차에 자기 자리를 잡으면 그거에 맞춰서 조교들이 학생좌석표를 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작된 좌석표와 출석부를 들고 강의실 맨 뒷자리에 서서 학생들을 하나하나 체크합니다. 생각보다 긴장되고, 은근히 신경이 쓰였죠. 더군다나 필수 교양이라서 70명이 넘는 대형 강의였기에 자칫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크죠.
학생좌석제의 문제는 해당 좌석에 누군가 앉아있다면 원래 학생이 맞는지 확신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가끔 가다 보면 분명히 다른 얼굴인데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별이 다르면 문제가 없지만 묘하게 닮은 듯 다른듯한 사람들이 있죠.
그럴 때는 살짝 교수님들께 가서 학생 이름과 얼굴이 매칭이 되는지 여쭤봅니다. 아무래도 학생 얼굴을 교수님들이 잘 아시거든요. 문제는 몇몇 교수님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며 “00 선생, 믿고 맡깁니다."라고 넘어가십니다. 그러면 저만 진땀을 흘리며 ㄷ다른 수업일에 같은 학생이 맞는지 다시 체크해 보죠.
조교의 또 다른 업무는 학생들의 출결 이의제기를 받아주는 겁니다. 보통은 강의 뒷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두기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떼를 쓰듯이 해달라는 학생들도 있죠. "선생님, 제발요~~"이러면서요. 저도 분명 학생인데... 어느새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있는 저를 보면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 싶기도 합니다.
저가 겪은 에피소드 중 하나는 유학생 한 명이 봐달라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더니 자신의 학과 교수에게 가서 출결이 부당하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두었지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기억입니다.
물론 조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교수님과의 소통입니다. 인문대 교수님들 중에는 종종 컴퓨터에 약한 분들이 계십니다. 보통은 학기 초에 교수님 성향을 파악하고 미리 컴퓨터를 세팅해 두거나 합니다. 문제는 노트북을 들고 오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노트북과 수업 기기 연결만 잘하면 되는데, 가끔 노트북을 두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제가 열심히 뛰어갑니다... 노트북을 챙기러 교수님 사무실로요.
조교 업무를 하다가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중간고사 시험 보조였습니다. 교수님이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수업 시작 1시간 전까지 시험문제를 안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50분쯤 남았을 때에 시험문제가 도착했고 70개가 넘는 시험문제지를 뽑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프린터실에 갔더니 갑자기 기계가 멈춰버렸습니다. 시간은 촉박한데 프린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식은땀을 흘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다행히 같은 층 연구소의 조교가 연구소 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시험 시작 10분 전에 겨우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로 뛰어갈 수 있었죠. 교수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험을 시작하셨지만 참 쉽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조교 근무는 늘 예상치 못한 소동과 긴장이 따릅니다. 이젠 익숙하니깐~ 싶으면 무슨 일이 꼭 터지고, 긴장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터지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근무죠. 그리고 교수에겐 학생, 학부생들에겐 조교선생님이라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치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경험들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