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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대학원생에게 관습이란 것

부조리와 전통 사이

by cm

예전 연재에서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갔던 행사로 신입생 세미나를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내가 신입생 세미나의 대상자가 아니라 신입생 세미나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 됩니다. 그런데 신입생 세미나를 준비하려는 과정에서 저는 어떤 일을 겪게 됩니다. 오늘은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석사 4학기가 되면 졸업 준비에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입생 세미나 준비라는 숙제가 하나 더 주어집니다. 사실 저는 신입생 세미나가 그렇게 좋은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형식적이고,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조림돌림하는 것 같은 신입생들에게 부담만 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을 기회로 이 세미나를 없애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저와 동기들이 석사 3학기였던 지난 학기에, 석사 4학기 선배들이 신입생 세미나를 없애려고 했다가 박사과정 선배 한 분과 크게 다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분위기가 정말 살벌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먼저 같은 분과 동기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우리 분과 선배들에게 메일을 보냈죠. “신입생 세미나를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분과 선배들은 “편한 대로 해라”, “굳이 할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이셨고 그래서 우리 분과는 자연스럽게 신입생 세미나를 안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다른 분과 동기들에게 전달했더니 예상치 못한 반발이 나왔죠. 한 동기는 “우리는 박사 선배들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는데, 네가 멋대로 정하면 어떡하냐”라고 따졌고, 또 다른 동기는 “네가 신입생들이 신입생 세미나를 들을 권리를 뺏은 거 아니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순간 저도 욱해서 “이런 부조리 자체를 아무도 얘기 안 하는 게 더 문제다. 그걸 선택 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라고 맞섰죠.


결국 합의는 못 보고, 전체 신입생 세미나를 딱 한 번만 하는 걸로 절충했습니다. 그런데 저랑 언성을 높였던 동기 두 명은 세미나에 아예 나오지 않았죠. 이 일을 겪으면서 제가 느꼈던 가장 중요한 생각은 '당연한걸 당연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게 어렵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신입생 세미나는 부조리였고, 저의 반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입생 세미나는 전통이었습니다.


인문대 대학원은 오래된 학문을 하는 만큼 변화에 느리고 전통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것들이 그만큼 안정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거든요. 다만 변화해야 할 때에도 변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신입생 세미나가 부조리인지 전통인지는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서 다를 겁니다. 다만 그런 논의 자체를 선배들한테 꺼내지 못하는 건 문제가 아닐까?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부조리와 전통, 그 어딘가를 맞춘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느꼈습니다. 나름대로 절차를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각자 처한 상황과 생각이 다르니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더라고요. 이후로도 이런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정말 모두에게 옳은 건지 타협과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이 가끔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대학원 생활을 넘어서 삶이란 게 이런 시행착오와 고민의 연속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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