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의 순간에도 마음이 무거운 이유
석사 과정 대학원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긴장되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사실 횟수로는 셀 수도 없습니다. 매 수업의 발표가 긴장되고 중요하거든요. 지도교수님을 만나서 얘기하는 순간 중에도 안 중요하고 긴장되지 않은 때가 있을까요?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긴장되는 순간은 열심히 준비한 석사논문 주제를 지도교수님께 처음 발표하는 날일 겁니다. 저에게도 이런 날이 있었죠. 과연 그날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여러분께 조금 공유해 보겠습니다!
석사 4학기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도교수님 앞에서 석사 논문 연구계획서를 발표하는 세미나를 치르게 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죠. 동기 셋이서 차례로 발표를 하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제가 첫 번째 순서가 됐습니다. 준비한 발표를 끝내자마자 선배들의 피드백이 쏟아졌습니다. “선행연구를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연구방법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같은 말들이 이어졌고 솔직히 좀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저의 발표가 끝나고 나서 동기 A와 B도 차례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발표 때보다 선배들의 피드백이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논지 전반에 문제가 있다”, “이 주제는 논문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말까지 나왔고 듣고 있던 저도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세 명의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 지도교수님께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기에 이러한 마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3명의 발표가 모두 끝나고 나서 저희는 긴장한 채 교수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데 드디어 교수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cm 이는 해당 주제가 발전 가능성이 보이니깐 석사 논문을 써보도록 하자.” 교수님이 제 이름을 부르며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속으로 ‘드디어 통과구나’ 싶어 안도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A와 B의 주제는 논문으로의 발전이 힘들어 보인다. 다른 주제를 다시 준비해서 연구계획서를 써오도록 하라.”라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분명 기뻤지만, 바로 옆에서 발표한 두 동기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교수님이 강의실을 나가셨지만, 선배들 중에 우리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동기 B가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해서 셋이서 조용히 흡연장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서도 아무 말 없이 그냥 B가 담배 피우는 걸 지켜만 봤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동기 A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고 B도 한숨을 푹 쉬면서 담배만 연신 피워댔습니다. 저는 그저 옆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두 동기를 바라보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격의 기쁨이 이렇게 무거울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석사 논문 주제 발표는 누군가에겐 합격의 순간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벽으로 다가온다는 걸,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느끼는 미안함과 복잡한 감정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죠. 아마 이런 순간이 대학원생 모두에게 한 번쯤은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대학원이란 게 더욱 어려워지더라고요. 대학원에서의 많은 과정과 성취가 혼자서 해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온전히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거든요. 내가 잘 되었더라도 곁에 있는 동기가 낙담과 좌절한다면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과 미안함 사이의 복잡한 감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더군요. 혼자의 성취가 가장 중요하지만 함께 성장해야 하는 이 묘한 공동체 안에서 기쁨도, 미안함도, 침묵도 모두 감당하는 것이 대학원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