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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대학원생에게 박사과정이란

더 높은 기대와 책임 앞에서

by cm

지난 연재에서 석사논문을 심사받던 저의 모습을 적어보았습니다. 논문 심사를 통과한 저는 무사히 석사 학위를 딸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쉬지 않고 바로! 박사과정을 밟으러 들어가죠. 박사과정생이 된 저는 별생각 없이 수업에 다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꽤나 달라진 지도교수님의 반응과 수업에서 저의 역할에 많이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처음 박사과정의 무게를 느낀 날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윗 문단에서 얘기했듯이 박사과정에 진학한다고 해서 뭔가 확 달라진 삶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석사학위를 가졌지만 여전히 지도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고, 저의 일상도 석사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수업에 참여했는데, 막상 교실에 앉아보니 내 위에 선배가 딱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벌써 선임이 됐나?’ 싶어서 살짝 당황스러웠죠.


높은 학기부터 발표를 시키는 지도 교수님 성향에 따라 발표 순서도 가장 앞선 순서였습니다. 때문에 저와 선배는 바로 다음 주에 발표를 하게 되었죠. 1주일 만에 발표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은근히 부담스러웠지만, 박사과정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2주 차 수업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꽤 잘 쓴 글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교수님의 반응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석사를 땄으면 프로가 될 준비가 된 거다. 세미프로가 이런 글을 써서 되겠니?”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교수님이 나와 내 글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저에 대한 교수님의 태도 변화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2주 후에는 고대사 전공 후배가 발표를 했습니다. 저는 석사 때처럼 세밀한 것들을 지적하는 방식의 토론을 준비해 갔죠. 그런데 이번엔 교수님이 제 토론의 내용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박사과정은 학위논문을 써본 사람이기 때문에,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토론을 해야 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더 이상 세세한 오류를 짚는 게 아니라 글 전체의 논지와 방향성에 도움이 되는 토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나의 발표와 토론 모두에서 교수님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수님께서는 후배들이 글을 쓸 때도 봐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라는 당부까지 하셨죠. 박사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더 큰 책임과 더 넓은 역할이 내게 주어졌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느끼게 됐습니다.


박사과정이란 것이 단순히 ‘공부를 더 오래 한다’는 의미 이상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교수님이 내게 기대하는 수준, 그리고 후배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짊어지고 연구자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박사과정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박사 1학기는 많은 것이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더 단단해져야 함을 느끼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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