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by 회계사 에사 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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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65)


<리스본행 야간열차>, 몇 년 전 영화로 접했던 작품이다. 리스본에 가기로 결심하며 영화를 다시 봤다. 전보다 영화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한평생 '존경받는, 하지만 재미없는 파피루스 같은 인간'으로 살아온 교수 그레고리우스가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포르투갈 여자와 책 한권을 계기로 일탈하는 과정, 그리고 마주하는 책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삶.


프라두의 삶은 살라자르 독재 정권에 대한 레지스탕스의 저항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1974년 4월 25일은 포르투갈에서 무혈 혁명(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병사와 시민들이 총 대신 빨간 카네이션 꽃으로 자유를 되찾은 날. 영화는 무채색 색감의 배경에 빨간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여자의 외투, 마리아 에사의 머리칼과 자동차, 관에 놓이는 꽃들. 프라두의 삶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각자가 자신의 삶에 가지고 있던 열정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저자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피터 비에리다. 그는 스위스 베른 출신으로(그레고리우스도 스위스 베른 출신이다.) 24년간 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런 그의 삶이 녹아들어 소설 자체가 하나의 철학서처럼 느껴졌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삶 자체에 철학적 고민들이 응집되어 있다. 저자의 자전적 인물로 추측되는 그레고리우스는 다니던 학교의 교장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프라두의 삶을 좇아 홀연히 떠나버린다.


우리 둘 모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존경하지요. 그의 <명상록> 가운데 한 부분을 기억하실 겁니다.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p48)


영화를 본 후,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 책을 구매했다. 비행기에서도,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에서도 읽을 생각이었다. 여행을 먹고 즐기려 가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답을 찾기를 원했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듯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입사를 앞두고 붕 떠있었다. 늘 입버릇처럼 직업과 별개로 스스로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갈 거라고 말했지만 정작 아무런 확신도, 방향도 없었다. 나는 그저 정해진 길을 성실하게 걸을 줄만 아는 사람이었다. 그레고리우스처럼.


10시간의 비행 동안 책을 꽤 읽었다. 포르투에 도착해서는 에그타르트와 포트와인을 잔뜩 먹고, 리스본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서 책을 펴자 우연찮게도 이런 프라두의 글을 마주했다.


_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나는 코임브라의 딱딱한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이 기차에서 절대로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기차의 궤도와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속도도 정할 수 없다는 것. 나는 그 기차를 볼 수도 없고 누가 기차를 운전하는지, 기관사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가 신호를 제대로 읽는지, 전철기가 잘못되어 있으면 알아채는지도.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객실 칸을 바꾸지 못한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람들이 있는 칸은 내 칸과 아주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가서 볼 수 없다. ...

내 칸에 가끔 손님이 오기도 한다. 문이 닫히고 잠겨 있는데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방문객은 있다. 거의 언제나 나에게 맞지 않는 시간에 온다. 대부분 현재라는 시간의 손님들이지만, 과거에서 온 손님들도 많다. ...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p521)


프라두는 독재 정권 아래 판사의 아들이자, 의사였다. 신을 믿지 않지만 성당을 사랑했던 사람. 그는 지적이고 공정했고 그 사실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의사로서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지만 비밀경찰 멘드스의 목숨을 구해주며 그 모든 존경이 경멸로 바뀌기도 했다. 뇌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동맥류를 가진 채 일이 끝난 새벽엔 글을 쓰는 것에 몰두했다. 그는 글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깨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아닌지 알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신뢰와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타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사람. 빛나는 외면과 부유함을 가졌지만 자신의 삶에 엄격했던, 외로운 사람이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프라두의 글에서, 그리고 프라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에서 각자의 한계, 각자의 딜레마와 마주하곤 한다. 그리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삶을 구성해 나간다. 프라두가 기차에 비유했듯 사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조차 속도도, 기관사도, 기차의 칸도 선택할 수 없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란 수동적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찾아 나설 때 진정으로 닿을 수 있는 무언가이다. 그레고리우스가 쳇바퀴 같은 생활을 떠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올랐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과 마주하는 여정이 시작됐듯이 말이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p607)


책 속 빛나는 인물들 중에서도 마음에 가장 남는 인물은 주앙 에사였다. 그는 프라두와 함께 저항 운동을 했던 동료였다. 프라두가 목숨을 구해 준 비밀경찰 멘드스에게 고문을 당해 찻잔을 잡기도 힘들 만큼 손이 망가져 버린 사람. 고통을 견디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으려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사람. 그 손은 본래 피아노를 치는 손이었다. 수많은 장면 속에서도 에사의 손이 기억에 남았다. Esa, 에사라는 나의 두 번째 이름은 그에게서 왔다. 책을 덮고도 그 이름이 어른거렸다. 대단한 사회 운동가가 되고 싶다거나 주앙 에사 같은 사람이 될 자신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 손이 자신답게 사는 삶의 상징처럼 보였다. 고집과 신념. 고통과 압력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이 있는 삶은 분명 아름다웠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읽고 쓰는 행위를 지속하려 하는 것도 어쩌면 그 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프라두가 말하듯 '흘러가는 유한한 시간에 대한 자각을 자신의 습관과 기대, 특히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위협에 대항할 힘의 원천으로 삼기. 다시 말해 유한 시간에 대한 자각을, 미래를 닫지 않고 열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삼기(p477)' 위해 가장 나답게 할 수 있는 행위는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 사실 아주 사소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문장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이런 경험은 폭음이나 불꽃이나 화산 폭발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경험을 하는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이 아름다운 무음에 특별한 우아함이 있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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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Comment


책이 두껍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읽으면 더 수월하게 읽혀요. 여행에 들고 가기엔 조금 무거울지 모르겠지만 여행지로 가는 길에 읽기에도 좋습니다. 프라두의 글에 아름다운 문장이 참 많고, 인물들의 삶도 모두 각자만의 빛으로 아름답습니다. 프로젝트 이름인 'Esa 에사'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를 소개하려니 이 책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어 첫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몸을 돌려 천천히 키르헨펠트 다리 쪽으로 향했다.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57년이 지나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이제 완전히 장악하려고 한다는, 불안과 해방감이 섞인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p25)


이 문장을 읽으며 여행을 떠날 때 그레고리우스가 느꼈을 불안과 해방감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 '영혼의 이끌림'을 따라가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레고리우스처럼 모든 걸 그만두고 떠나는 여행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들로 현실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짚어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글을 통해 다른 삶을 경험하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레고리우스처럼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글을 언젠가 마주할 수도 있겠죠. 읽고 쓰는 시간이 축적되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믿음. 이 프로젝트는 이 믿음을 기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영향이나 변화를 준 책이 있나요? 혹은 변화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나요?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나요? 꼭 이 질문이 아니더라도,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해 주세요. 간단한 감상도, 요즘 하고 있는 생각도, 글을 받아보고 싶은 책도 좋습니다.



Written by Project Esa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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