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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1. 나는 시골에 추억이 있다.

by 민정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보낸 경험이 있었다.

벼가 빼곡히 심어져있는 허허벌판 한가운데 서있는 기상관측소. 도시에서 기상청에 다니던 아빠가 그곳으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 나와 우리 가족은 2년 간 그곳에서 지냈다. 일종의 관사같은 곳이랄까 일층은 관측소 사무실로, 이층은 가정집으로 쓸 수 있는 구조였다. 그 당시만해도 날씨를 예측하는 슈퍼 컴퓨터가 딱 한대 이던 시절, 사람이 날씨를 직접 관측하고 일기도를 일일히 수기로 작성했었다. 온도와 풍속을 정확히 하기 위해 외진 곳에 덩그러니 위치했던것 같다.


어쨌거나 덕분에 나는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넓은 잔디밭에서 종일 뛰어놀았고 엄마가 구석에서 꽃들과 텃밭을 가꾸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엄마에게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곳. 지독히도 낯설었을테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저 좋았다. 해바라기가 정말 크게 자라서 내 키보다도 훨씬 컸던 기억, 해바라기 씨앗을 볶아 먹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가루와 섞어 붉게 손톱 물들이던 기억, 분꽃 씨앗에서 뽀얀 가루가 나오면 화장한답시고 얼굴에 펴발랐던 기억, 잔디 밭에 누워서 보던 구름의 모양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농약을 치지않은 토마토는 벌레도 먹고 생채기도 많았지만 한입 베어먹으면 달달한 과육이 뚝뚝 떨어졌다. 샛노란 꽃이 예뻤던 호박도 울퉁불퉁 한 것이 유난히 못생겼었다. 보기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도시에서는 이런 귀여운 아이들이 모두 상품성 없는 못난이들로 분류된다고 한다. 보기에는 그래보여도 얼마나 맛있는지 정성껏 키워본 사람은 알테다. 꼭 알아줘야 하는건 아니지만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씨앗이 움터 새싹이 자라고 꽃이 피고 그것이 열매를 맺는다.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지만 그 당연한 일을 애정의 눈으로 관심있게 바라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나 자랐다니 자연의 힘이 놀라울 뿐이다. 작디 작은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 뿌리서부터 얼마나 많은 힘을 끌어모았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햇볕과 양분은 흡수하고 벌레들이 싫어하는 향을 내뿜어 견재한다. 인간도 마찬가지, 도움이 되는 것들은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가 되는것들은 물리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자연에는 힘이 있다. 어른이 되어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이 견디기 버거울만큼 힘들 때도 있지만 그 힘을 보며 '이 태풍도 지나가겠거니'하며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도시 속에 살고 있지만 내 짝꿍과 함께 텃밭을 가꾸어 보기로 했다. 그것이 매일 아침일찍 일어나 몸을 움직여야하는 부지런한 삶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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