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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Sep 14. 2023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늙은 장애인의 노래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를 바라볼 때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앙다문 입술, 독기 찬 눈에, 웃는 것인지 화내는 것인지, 어떻게 맞춰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냥 심술궂고 까다로운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가?

    

밥은 흘리면서 먹고,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도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해도 언제나 화난 얼굴에,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장애인?     

대화를 하거나 행사 때 마이크를 잡으면 늘 어리석게 혼자 큰 소리로 악을 쓰는?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하나?     

그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인가?

당신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비장애인들이여,

이제부터는 지금 나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실된 나를 돌아봐 주시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겠네.


지금은 여기 이렇게 조용히 내 몸뚱이하나 의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 당신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며 말이 많은 늙은이로 취급받고 있지만, 나는 열 남매 중의 그냥 작은 아이였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와 자매들, 시골의 작은 집이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네.

     

7세의 소년이었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날개가 달린 듯한 두 발로 무지개를 타러 태조산 산꼭대기에 올라가기도 했다네.  

    

20세의 신랑이었을 때 처갓집에 앉아 두근거리는 맘을 안고 술맛인지 물맛인지도 모르고 넙죽넙죽 행복을 받아 마셨지.  

    

25세가 되었을 때는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는 아주 귀여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네.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었지.

    

30세가 되었을 때 딸과 아들 그리고 착한 아내까지 내가 지켜야 할 그리고 내가 보살펴야 할 식구들이 생겼어 그것은 벅찬 희망과 용기였지.

    

31세가 되었을 때 사고로 나의 희망과 친구, 지인들, 그렇게 모든 꿈들이 내 품을 떠나고 그 자리에는 다가올 암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 자리 잡았지. 하지만, 내 곁을 지켜준 아내 덕분에 나는 그렇게 두렵거나 슬프지 않았어.  

   

35세가 되자 비록 휠체어였지만 내 무릎 위에서는 아기가 다시 놀기 시작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린아이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지.

      

그리고 또다시 슬픈 날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네.

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가까웠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그렇게 떠났지 앞날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  

    

지금 내 아이들은 모두 행복하게 그들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좋았던 시간들을 떠올릴 뿐이라네.  

   

이제 나는 늙은이가 되었지. 자연의 섭리는 어찌나 잔인한지, 나이가 많아질수록 바보처럼 보일 뿐이야.      

이미 무너져 내린 몸에서 우아함과 활기는 사라진 지 오래,      

힘찬 두발이 서 있었던 자리에는 이제 휠체어 바퀴 두 개가 자릴 잡고 있다네.  

   

하지만, 이 늙고 고장 난 몸 안에는 여전히 건강한 젊은이가 살고 있어, 때때로 내 두근거리는 마음이 벅차오를 때가 있네.  

   

내가 겪었던 기쁨과 지나왔던 고통을 기억할 때면 나는 다시 내 안에서 사랑으로 가득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느끼네.   

   

너무도 짧았던, 너무도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생각할 때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뿐이지.   

   

그러니 이제는 눈을 뜨길 바라네, 세상 사람들이여 눈을 뜨고 바라봐주시게.      

까다로운 장애인이 아닌, 그냥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 봐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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