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계, 향(向)

너(2017) 여름

by 리그리지 전하율

나는 소리를 좋아한다. 만약 내가 사는 세상에서 그 어떤 소리도 남지 않고 몽땅 사라져 무의 상태가 된다면 난 삶을 더 살아낼 자신이 없다. 그만큼 내게 소리는 중요하다.

귀에 거슬리는 몇 가지 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리를 좋아하는데 특히 좋아하는 소리가 있다.


나는 비가 오는 날 만들어지는 모든 소리를 아낀다.

비 오는 날 홀로 남은 집에서 부드럽고 폭신한 홈웨어를 입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듣는 잔잔한 피아노 재즈 음악 사이에 섞인 어렴풋한 빗소리를 좋아한다.

비가 땅에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좋아하고, 비가 나뭇잎에 맺히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좋아한다. 차의 유리 표면에 닿는 거센 빗소리와 그 비를 걷어내기 위한 와이퍼 소리도 좋아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마는 마치 나를 위한 소리의 전시회라고 생각했다.


난 그해 여름의 빗소리를 들으며 너를 떠올렸다.

일 년에 한 번, 장마철에만 열리는 소리의 전시회에 네가 나의 뮤즈가 된다.

나는 그 기간 내내 빗소리를 들으며 너의 얼굴을 기억해 냈고 너의 향을 느꼈다. 물론 그 기묘했던 만남 이후 너와의 접점은 전혀 없었다.

난 너에 대해 아주 사소한 것도 알지 못한다.

이를테면 이름, 나이, 사는 곳 따위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그런 것들 보다 너의 향이 가장 궁금했다.

이 전시회에 그 향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텐데- 빗소리가 내 귀에 닿는 날이면 날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너를 알기 이전 난 빗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마도 나의 지난날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년 전 열대야에 잠을 이룰 수 없던 여름밤 들었던 노래 가사, 같은 그런 생각들 말이다.

난 꽤 자주 과거에 대한 상념에 빠지는 편이다. 추억이라고 하면 좋을까.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은 내가 현재를 살아낼 수 있게 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도와준다.

어떤 정확한 주제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면 대부분 과거의 나를 곱씹는 데에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그리워하며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지나간 시절의 ‘나’는 나라는 사람의 원동력일 뿐이다.

아무튼 그런 내가 과거에 대한 상념을 멈추고 그 자리를 너로 채웠다.

아, 너 역시 이미 과거가 된 사람이니 어쩌면 이 역시 지난날에 대한 상념일까. 그렇지만 난 여전히 너의 향이 궁금하니 이것이 과거의 상념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당시로부터 약 육 년이 지난, 장마가 막 시작된 어느 여름날의 자정이 조금 넘은 밤이다. 난 짙은 회색의 나무 손잡이가 달린 도기 잔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아주 감각적이고 기묘하고, 어두운 편집샵에서 나올법한 재즈 힙합 아웃트로를 듣고 있다.

당시와 음악 취향이 사뭇 달라졌지만 그 노래 사이로 들려오는 세찬 빗줄기 소리가 여전히 반갑다. 그리고 그 빗줄기 사이로 여전히 너의 향이 또렷하게 내 온몸을 감싼다.

나는 아마도 동이 트기 직전까지 여전히 너를 떠올릴 요량인 것 같다.


아무튼, 다시 육 년 전 그해 여름으로 돌아가보겠다.


너로 시작해 결국 너로 끝내지는 못했던 그해 여름, 난 일 학기를 마치고 휴학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나의 모순적인 마음 때문이었다. 나의 꿈이라는 작은 파도가 나를 충만하게 채우고 있었으나 역시 그 때문에 ‘나’라는 사람이 다른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입시를 내던진 그 당시와 비슷한 결의 감정이 다시 솟구쳤다. 두 번이나 그런 감정이 마음에 일렁였다는 것은 분명 내 꿈에 사소한 변화가 생겼음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난 정말로 나의 첫 번째 파도를 떠나보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한때 내 짧은 인생의 전부였던 나의 작은 파도를 알량한 마음으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엔 멈추는 게 낫겠다 판단했다. 마지막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내 파도를 존중하고 싶었다. 그것은 결국 지나간 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은 뜻 일 테니 말이다.

모든 비유적 표현을 다 집어치우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연기를 그만 때려치우고 싶었고 다른 어떤 꿈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기가 내 평생의 꿈이던, 나를 열정으로 충만하게 채우던 그날들을 아무것도 아닌 시간으로 만들기는 싫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 얄팍해지기 전에 그만 멈추기를 택했다.

누군가는 ‘그냥 단순히 마음이 변한 것 아니야?’라고 질문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모순적인 마음이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그런 애매하고 모순적인 마음.

역시 그렇기에 그만 멈추기를 택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이런 모순적인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공감하는 이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여전히 느끼는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공허가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공허였다. 가족, 친구, 또는 가까운 지인이 말하기를, 나라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어떤 흔들림도 없는 대쪽 같은 사람이란다. 물론 일부 맞는 말이다. 나는 타인을 크게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공허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뜻은 아니다. 그들을 필요로 하진 않지만 나 역시 그들 때문에 공허를 느낀다. 내가 스스로 세운 벽에 서서히 무너진다. 물론 그 무너짐조차 어떤 타인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 늘 혼자 생각하고 결국엔 그 생각들을 삼킨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래왔던 것 같다.

그에 사소한 이유는 있다. 그저 내 머릿속에 엉켜있는 생각을 타인에게 장황하게 늘어놓는다고 해서 후련하다거나, 의문이 풀리던가 하는 어떤 물리적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인지하는 공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무수히 많은 공허 중 유독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공허는 나를 동요하게 만든다.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곳에서 그 공허는 더욱 커지고, 학교는 내게 그런 곳이다. 그곳에 조금 더 깊이 발을 들이려 할수록 벽은 더 견고해지고 말았다. 그 공허는 나를 지독히도 괴롭게 만들었고 난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마 첫 번째 이유가 선행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난 사소하거나 혹은 거대한 그 이유로 휴학을 결정했다.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다.

덕분에 그 여름 내내 마음껏 소리가 만든 전시를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해 여름의 빗소리, 그리고 너의 향이 내 평생의 여름을 정의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계, 향(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