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호황이었던 이곳은,
내 서재 책상 밑이다.
여기에는 전등, 공기청정기, 인터넷, 프린터, 컴퓨터, 선풍기, 각종 충전기 등이
항상 시끄럽게 일을 하고 있었고,
수요가 넘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 이곳에는 분명히 호황의 소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 호황은 노트북이 거실로 옮겨진 순간부터 사라졌다.
옮긴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날씨였다.
서재에는 에어컨이 없고,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지고 길어지면서
더는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네 번의 여름을 선풍기로 잘 버텼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선풍기로도 안 됐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노트북은 거실로 이동했고,
서재는 불황에 접어들었다.
지구 온난화는 내 방 전기 사정에도 영향을 준다.
이제 이곳의 콘센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아무 의미 없이 서 있다.
콘센트와 전기의 본질은 ‘일하는 것’인데
지금은 ‘아무 의미 없이’ 서 있을 뿐이다.
내 서재 책상 밑 콘센트들은
말 그대로 일자리를 잃었다.
가끔 팬티 가지러 들어올 때 보면
‘그래도 겨울이면 다시 돌아올 거야’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속마음은 이렇다.
‘글쎄다... 쉽지 않을 거야.’
응, 쉽지 않아.
나는 이 집에서
실용과 효율을 앞세워
모든 것들의 조화를 도모하는 사람이다.
집 안에 있는 것들이 모두 공평한 기회를 갖고
과정은 투명하며 결과는 정의롭기를 바라는 사람.
(어디서 들어본 말 같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역시 모두가 불평 없이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런 거다.
서재를 찾는 횟수가 줄어드니
이곳에서 밀려난 녀석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밀려난 녀석들이 이곳으로 왔다.
이제는 액자들을 이 자리에 둘까 생각 중이다.
콘센트가 필요하지 않은 녀석들이다.
콘센트와 사이좋게 지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각자 위치에서 조화롭게 지내고 있겠지.
그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