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 앞 산책을 하다 라애가 좋아하던 벤치를 발견했다.
“라애야, 저 벤치에 앉았다가 가자.”
“싫어.”
“응?”
(저 벤치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라애에게 앉자고 제안했을 때 거부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타율 10할이 깨지는 순간이다.)
“라애 저 벤치 좋아하잖아. 오늘은 앉기 싫어?”
“아가 때 좋아한 거야.”
아, 참. 그래. 30개월을 산 너도 과거가 있는 거지, 그렇지.
라애와 나의 시간 총량은 달라서, 30개월의 라애에게 한 달은 1년 2~3개월이다.
그래서 그렇게 라애가 빨리 크는 만큼 좋아하는 게 빠르게 바뀌는 건 어쩌면 내 시간에서는 빠르게 바뀌는 것이고, 라애 시간에서는 충분히 좋아할 만큼 좋아해서 보내주는 거다.
영원한 건 없기에 그렇다. 영원한 건 없기에.
돌아오는 길에 라애가 묻는다.
“아빠, 우리 눈 오는 날 여기 뽀드득 뽀드득 밟았지?”
“맞아, 라애. 기억하는구나.”
“이번에도 아빠랑 같이 눈 밟자.”
“좋아.”
고맙다. 10년 전 눈 밟은 날을 기억해줘서. 그리고 아직도 좋아해줘서
우리 그렇게 좋아할 만큼 좋아하고 보내주는 거다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