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숲+사귐=책
<나는 숲교사입니다>
나의 직업은 '숲교사'. 나는 숲에 대해 가르친 적이 없는데 교사라고 불리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숲교사'는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의 역할은 수업하는 교사가 아니다. 나는 경험자, 안내자, 숲에서 먼저 놀아 본 사람, 숲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가르치기보다는 숲과 사귀어 본 사람으로 명명되고 싶다. 숲-交(사귈교)-사.
아이들을 숲에서 만날 때마다 나의 가장 큰 역할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 내가 먼저 해봤는데 괜찮다는 뜻이다. 가까이에서 벌이 붕붕 댈 때, 흙물이 얼굴로 튀었을 때, 언덕에서 놀다 넘어졌을 때 큰 일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한다. 숲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아이들에게 낯설다. 나는 이미 겪어 잘 아는 사람, 그래서 믿고 의지하며 물어보는 대상이 된다. 알고 보면 무섭지 않다고, 낯설 때는 무서울 수 있다고, 별일 아니라고 자꾸 안심시키고 거듭 말해준다. 무엇이든 해 본 사람이 괜찮았다고 하는 말은 여지없이 강한 신뢰를 준다. 아이들도 경험자의 말을 믿어준다.
생소한 숲의 세계에 처음 들어 온 아이들에게 나는 기준점이 된다. 내가 하는 말, 내가 감탄하며 내뱉는 표현, 된다와 안된다의 기준이자 시작점이다.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숲을 대하는 나의 시선과 태도, 자세, 에티튜드인 것이다. 나무를, 흙을, 생명을 대하는 나의 시선과 말과 표정이 아이들의 첫 시작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맑은 거울과 같고 땅으로 스며드는 빗물과 같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늘 다짐을 한다. 오늘 하루가 아이들에게 괜찮은 기억으로 남기를, 같이 나눈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즐거운 마음, 벅차오르는 순간에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아이는 나를 보고 생긋 웃는다. 나도 마주보고 활짝 웃는다. 왜 좋은지, 뭐가 좋은지 우리만 아는 비밀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웃는 웃음을 많이 만난 날은 내가 숲교사라는게 참 좋다.
아이들이 숲과 만날 때 무엇이든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 스스로 찾을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 해주지 않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숲에서의 내 직업적 소명이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자유로움과 놀이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내 경험을 그대로 답습하도록 가르쳐 주지 않기, 내가 느낀 재미를 먼저 알려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기도 한다. 좋고 싫음은 스스로 찾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야 평생을 따라쟁이로만 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만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떠올리며 즐거울 수 있는 어떤 순간, 신나게 놀았던 기억들이 자기만의 것이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직접 찾고 느끼도록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살피는 위치를 고수하려 한다. 과정을 통해 비로서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았을 때 아이들과 나는 두 손을 맞대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또 어느 감탄의 순간 눈과 눈이 맞닿았을 때 끄덕임을 나눈다. 나도 그랬다고, 네가 지금 느끼는 그 기분을 나도 안다고 맞장구를 친다. 어른이 된 나도 그 손끝의 짜릿함과 눈에 담은 순간의 기억, 설렜던 마음을 추억하며 그 힘으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공감의 마음을 전한다.
멀리서 걸어오는 친구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손을 흔든다. 반가운 얼굴로 우렁차게 인사한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며, 숲이 무한하게 내어주는 풍요로움과 지혜를 함께 누리는 충만한 시간을 함께 하는 중이다.
그리고 숲교사로 1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 아이들이 겪게 된 관계의 어려움을 이제 숲 안에서 연습해보고 싶다. 지금의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사귐의 문제는 길에서 만난 들풀을 알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름모를 풀을 알기까지 관찰하고 탐색하는 몰입의 힘과 매일 만나는 나무의 변화를 알아채는 섬세한 시선, 나뭇잎 밑에 숨어있는 애벌레를 알아보는 관심만 있다면, 그리고 미지의 숲길을 헤쳐나가는 용기만 조금 더해진다면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가가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듣지 않고 혼자만 떠들고 있으면, 마음을 닫고 열지 않으면 사귐은 멀어진다. 직접 행동하지 않으면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몸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도 아이들의 현실이다. 잘 놀 수 있게, 그렇다면 친구와 같이 놀 수 있게 반복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조금 모자라도, 실패해도 툭툭 엉덩이를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다. 나는 숲교사, 그것이 다름아닌 아이들과 숲에서 만나는 나의 역할이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