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연물 놀이에서 배우는 사귐의 방법
<흑흑흙>
질겨서 질경이, 쑥쑥자라서 쑥, 고마워서 고마리! 풀이름들은 재미있다. 흙놀이를 하다가 '그럼 흙은 왜 흙이지' 던진 물음에 한 아이가 큰소리로 외친다.
"흙이 눈에 들어가면 따가우니까요~ 흑흑흑 울어서 흙이예요!"
숲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면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숲길을 걸으며 우리는 모르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정도 붙여간다. 흑흑흙처럼. 흙을 가지고 놀다가 눈에 튀어 흑흑 울어봤던 친구의 말 처럼 뭘 해보아야 안다. 놀아 봐야 재미있고 재미난 생각도 떠오르니까.
오랜 시간 경험해 본 바로 흙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매력이 있고 훌륭한 놀이 재료임이 분명하다. 흙놀이에 흠뻑 빠져 본 적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처음 숲을 경험하는 친구들에게 흙을 소개하다 보면 늘 비교대상이 모래와 먼지가 된다. 놀이터에서 익숙한 모래와 더러운 것과 동일한 먼지가 흙과 어떻게 다른지 알리는 과정이 늘 따른다. 땅에 떨어진 것은 더러운 것이라는 말에 익숙한 아이들은 열매를 따다가도 떨어뜨리면 줍지 않을 때가 있고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쑥을 캘 때도 땅과 거의 한 몸인 풀을 먹어도 되는지 묻는다. 숲의 생태계를 경험하고 반복하면 그냥 알 수 있는 일이 안 해 보니 모르는 사실이 된다. 아이들이 흙놀이의 매력에 빠져 그만두기 싫어지고, 또 하고 싶고 그리워지는 그 날까지 나의 흙소개는 계속 될 예정이다.
흙과 친한 짝꿍은 역시 물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진흙 웅덩이에서 폴짝폴짝 뛰기, 몰랑몰랑한 진흙만지는 놀이가 제일 인기가 많다. 흙놀이는 두 손이 가장 좋은 도구이지만 진흙을 담을만한 그릇이 있으면 더 좋다. 커다란 나뭇잎이, 넓적한 돌멩이가 그릇으로 변신하고 흙을 파기 좋은 단단한 나뭇가지도 훌륭한 놀이재료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머지 재료는 한 참 동안 놀 수 있는 '시간'이다. 흙놀이는 여러가지 단계와 과정, 그리고 다양한 방법들로 이루어진 만큼 짧은 시간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진흙스프, 흙주스, 흙케이크에 진흙젤리까지 아이들은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막대기로 긴 강을 만들고 물을 흘려 보내며 이쪽에 아까 잡은 올챙이들이 살 수도 있을 법한 작은 연못을 만들고, 옆으로는 개미들이 놀러 올 만한 멋진 흙산을 세우며, 길고 구불구불한 대운하를 파기도 한다. 한참동안 아이들이 흙 속에서 보내는 시간을 지켜보면 더없이 진지하고 또 진지하다. 4대 문명의 발상지만큼 중요하고 또 중요한 놀이문명의 발상지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와, 물이 나를 따라오네? 아랫 쪽을 더 파보자!"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흘러가는 물길따라 아이들도 몰려든다. 혼자 놀던 아이도 무리와 함께 우르르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명은 물을 떠오고, 한 명은 막대기로 땅을 더 깊게 파고, 또 한 명은 물이 새지않게 둑을 쌓는다. 그렇게 한참 놀다보면 혼자 놀던 아이도 함께 노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곤 한다. 넓은 흙놀이판에서 여럿이 함께 만들면 아무래도 혼자하는 것 보다 무엇이든 더 멋져 보이는 모양이다. 이렇게 놀이는 무리를 만들고 공감을 불러오고 성취의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더없이 좋다.
흙을 파다 보면 코로 스미는 흙 냄새, 물과 섞이며 달라지는 흙의 색깔, 꺼끌거리기도 부드럽기도 한 질감, 흙 속에 박혀있는 여러 모양의 돌멩이까지 모든 것이 놀이가 되고 놀이감으로 변신한다. 그런 것들을 만지고 놀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아이들은 땅강아지처럼, 두더지처럼 흙과 한 몸이 되어 간다.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도 차갑고 다리가 저릴 법도 한데, 늘 흙놀이의 마무리 시간은 아쉽기만 하니 몰입의 즐거움은 참으로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