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로 그리는 마음>
돌멩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면 그 단단함이 눈으로도 촉감으로도 전해진다. 동그란 돌멩이는 작지만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아주 잘 지낼 것만 같은 그런 단단함을 가졌다. 아마도 커다란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이리 뒹굴고 저리 차이며, 구르고 굴러 스스로 제 모양을 만들어서일까. 나도 아이들도 그런 돌멩이를 닮았으면 좋겠다.
막대기나 열매, 꽃과 벌레를 좋아하는 각각의 아이들이 있듯이 유난히 돌멩이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숲에서 계절 자연물 모으기를 할 때면 돌멩이만 잔뜩 모아 오고 흙더미에서도 돌멩이만 쏙쏙 골라내 갖고 논다. 개울에서도 엽새우와 올챙이를 찾기보다 돌로 탑 쌓기에 더 열심이다. 돌멩이 '예찬이'들에게 돌멩이는 '강하고 센' 아주 멋진 자연물이다. 나뭇잎을 찧기도 좋고 힘껏 던지면 '슝'하고 날아가는 전천후 도구이기도 하다. 게다가 반짝이는 조각이라도 박혀 있으면 최고의 보석이 된다.
숲에서 아이들과 놀 때는 손과 손을 잡는 것처럼 이것저것을 하나로 보지 않고 늘 연관 짓기를 한다. 숲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함께 배운다. 자세히 보지 않고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숲의 비밀스러운 연결고리, 그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진짜 재미이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솔방울을 발견하면 고개를 들어 어느 나무가 엄마 소나무인지를 찾고, 제비꽃 하나를 발견한 순간 옆을 돌아보면 온통 보라색으로 물든 드넓은 제비꽃 꽃밭이 펼쳐진다. 단단하게 생긴 돌멩이를 찾으면 하나둘 차곡차곡 쌓아놓은 돌더미 위로 돌멩이를 하나 더 올리며 탑을 쌓는다. 하나가 올려지면 그 위로 또 하나가 올려진다. 쌓기로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쌓으면 그 위로 하나둘 계속 쌓이듯이 마음도 켜켜이 쌓여 소원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비가 오는 봄날, 개울에서 개구리알을 만나면 아이들은 걱정이 많아진다. 개구리알이 비 온 뒤 개울의 거세진 물살에 떠내려 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다. 돌멩이를 모아 댐을 쌓고 개구리알이 물살에 흘러가지 않도록 울타리를 만드는 아이들의 마음처럼 돌멩이는 마음을 담은 소원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개울가에서 돌멩이를 찾으며 노래한다.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로 이어지는 돌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숲 속 어딘가 길에, 나무 밑에 떨어져 있을 돌멩이들을 상상하고 떠올려 본다. 산에 있는 바위도, 발아래 자갈과 모래도 달리 보인다. 바위에서 작은 돌멩이가 되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없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연결고리를 알아간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며 '나의 돌멩이'와도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겨났음을 느낀다. 수많은 돌멩이들 중에 나만의 돌멩이를 찾으면 이제 흔한 돌멩이가 아님을 배우니까.
소중한 무언가, 그리고 특별한 대상으로 나와 자연물이 연결됨을 느끼는 것은 '관계'를 알게 되는 좋은 시작이다. 숲에서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찾고, 손에 쥐고, 쓰다듬는 마음, 잃어버릴까 주머니에 넣고도 손으로 쥐고 있는 그 마음만으로도 좋다. 차가웠던 돌멩이를 한참 손에 꼭 쥐고 있으면 따뜻한 돌멩이가 되듯이 애착이든 정성이든 그 대상을 향한 마음은 전해지고 연결되는 법이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게 수많은 장미 중에 특별한 장미가 있듯이, 황금 들판을 보며 여우를 그리워하듯이 마음에 담은 어떤 것은 그냥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 된다. 수많은 아이들 중에 '내 친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땅 위에서 발견한 특별한 돌멩이 한 개를 만나는 과정과 똑같지 않을까.
우연히 만난 돌멩이를 소중히 여겨 집에 데려가면 내 돌멩이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숲의 연결고리가 집으로 이어진다. 숲에서의 기억이 집으로 오게 되는 일.
내 책상 위에도 색과 모양이 다른 돌멩이 셋이 놓여있다. 갈색 줄무늬 돌멩이와 둥그런 회색 돌멩이, 생김새가 독특한 돌멩이까지 셋이서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옆으로는 이른 봄부터 산책하며 데려 온 수양버들가지로 만든 고리들의 더미와 작년에 몇 개 챙겨 놓은 솔방울, 도토리들이 사이좋게 앉아있다. 그렇게 데려온 것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그리고 하나마다 그때의 계절, 그들과 만난 숲의 정경이 선명한 그림처럼 떠오른다.
얌전히 앉아있는 돌멩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따뜻한 마음과 애정을 담아서.
돌멩이 하나로 무언가 그리는 마음을 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꼬리글: 돌멩이 데려오기
숲에 가지 않아도 숲과 연결된 느낌을 갖고 싶을 때 마음에 쏙 드는 돌멩이를 방에 들인다. 책상 위나 욕실 한쪽에 두고 바라봐도 좋고 만지작거려도 참 좋다.
자연물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에 그리움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