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팔, 나뭇가지>
숲에서 놀 때 친구들이 제일 먼저, 그리고 자주 손에 쥐는 것은 도토리나 솔방울 같은 열매인 경우가 많지만 슬슬 겨울이 시작되는 숲에서는 단연코 나뭇가지가 제일이다.
적당한 굵기와 단단함, 맨질맨질하거나 우툴두툴한 촉감, 알파벳 와이(Y) 자 또는 삼지창 모양으로 갈라진 잔가지의 독특함 사이에서 오랜 고심 끝에 선택되는 '나만의 나뭇가지'는,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팔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파워를 장착한 슈퍼 히어로의 팔에 버금가는 새로운 팔. 숲에서 놀 때 친구들이 제일 먼저, 그리고 자주 손에 쥐는 것은 도토리나 솔방울 같은 열매인 경우가 많지만 슬슬 겨울이 시작되는 숲에서는 단연코 나뭇가지가 제일이다.
신기하게도 나뭇가지를 손에 꼭 쥐면 왠지 든든하고, 괴물이 나타나도 거뜬히 이길 만큼 강한 힘이 생기는 것만 같다. 이건 사실이다. 나뭇가지를 꼭 쥐고 있는 아이의 앙다문 입과 힘이 빡 들어간 눈썹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으니까.
마음에 드는 나뭇가지를 골라 손에 쥐면 그 팔은 강한 무기를 쥐고 있는 특별한 팔, 휙휙 허공을 가르면 멋진 소리가 들리고 땅을 힘껏 찍으며 걸으면 높은 산도 성큼 오를 것 같은 강한 용기가 솟아난다. 어깨가 한껏 올라간 무적의 용사 여럿과 함께 산을 오르면 그 에너지만으로 찬바람 부는 겨울산이 후끈후끈 데워지기도 한다.
숲에 소나기나 강한 바람이 불고 나면 땅 위에는 나뭇가지가 잔뜩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비와 바람이 떨어뜨린 나뭇가지의 모양은 제각각이어서 허리를 굽혀 땅을 살피며 나뭇가지를 고르고 모으는 것만 해도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한 개씩 두 개씩 길이도, 두께도, 질감도 다른 나뭇가지를 줍다 보면 제일 눈길이 가는 나만의 나뭇가지를 만나기도 하니까. 고르는 동안은 시간이 어디로 흐르는지 모를 만큼 집중하게 된다. 즐거운 몰입의 시간이다.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따라서 땅 위에 아이들만의 둥지를 짓는다. 다 같이 열심히 모은 나뭇가지들은 켜켜이 쌓으면 둥지가 되고, 힘껏 땅을 파면 삽이 되고, 문이 되고 길도 되는 집짓기 놀이의 재료가 된다. 아이들은 배우지 않아도 연필처럼 잡고 땅 위에 선을 그리고 낙서도 하는 쓰기의 도구로도 사용한다. 이것저것 놀이에 사용하다 보면 나뭇가지는 저절로 분류가 되고 나뉜다. 그 과정을 통해 '푹 꺾이면 풀대, 단단하면 나뭇가지'라는 구별법도 터득한다.
숲에서 아이들이 나만의 나뭇가지를 갖고 싶어 할 때면 우리끼리의 약속을 말해준다. '팔을 쭉 펴고 내 팔 길이를 넘지 않는 나뭇가지 고르기'가 우리끼리 약속한 기준이다. 너무 긴 나뭇가지를 골랐을 때는 적당한 길이로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굵은 나무 둥치에 긴 나뭇가지를 비스듬히 기대어 놓고 발로 힘껏 밟는 방법이다. 툭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그 모습 때문인지 나무길이를 적당히 만드는 이 과정은 놀이로도 인기가 많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나뭇가지를 고르다 말고는 오히려 긴 나뭇가지만 찾아 돌아다니며 부러뜨리기 놀이에 금방 빠져든다.
처음에는 혼자 하는 나뭇가지 놀이는 놀이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막대기를 많이 잡아 본 선배를 따라가게 되는 게 수순이다. 오늘의 막대기 탐험대에 숲에서 많이 못 놀아본 친구들이 끼게 되면 더욱더 그렇다. 멋지고 단단한 나뭇가지를 고르는 것부터 적당한 길이로 부러뜨리는 법까지 의기양양한 선배의 무용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옆에서 나의 역할은 추임새를 넣고 추억의 소환에 맞장구를 쳐주는 일이다. 최고의 막대기를 찾아 쥐어 본 경험을 한 아이의 역사는 격앙된 목소리만큼 힘이 있고 빛이 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남동생들은 그런 선배이자 형들의 이야기를 열렬한 눈빛으로 들으며 어딘가에 숨어있는 멋진 막대기를 찾느라 분주하다. 교사에게 찾아달라고 하던 친구들은 사라지고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으면 '형, 이건?'하고 확답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 운이 좋게 한 친구가 적당히 휘고 손에 착 감기는 마법사 지팡이에 버금가는 멋진 나뭇가지를 찾아내면 아직도 헤매는 신입 친구들과 동생들은 부러움의 눈길로 초점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들의 관계도는 나뭇가지 하나로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고 화살표의 방향도 한 방향으로 그려진다. 나뭇가지 더미에서 용케 찾아낸 멋진 나뭇가지의 힘이란 그 순간만큼은 대단하다.
단단하고 강하게 보이는 나뭇가지가 인기 있는 건 첫 번째이지만 스토리텔링을 얹어 막대기의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친구들의 능력도 눈길을 모은다. 나무껍질의 유무나 개성 있게 보이는 가지의 모양, 옹이나 상처를 발견하고 신화의 인물이나 캐릭터의 힘을 입혀 그럴듯하게 막대기를 돋보이게 만드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감탄과 함께 하하하 웃음이 난다. 막대기 탐험대의 관계도가 넓어지고 복잡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디어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낳고 그럴듯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 나뭇가지 하나가 취향과 상상으로까지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순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이 찾아낸 각각의 나뭇가지들이 모이면 그 도구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모둠놀이가 탄생하기도 한다. 단순한 칼싸움부터 총쏘기, 마법의 지팡이와 다른 세계로 워프 하는 도구에 이르기까지 나뭇가지는 훌륭한 연결고리가 되어 어느 순간 아이들 사이를 밀도 있게 이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나뭇가지는 나뭇가지 자체만으로도 놀이를 수없이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친구들의 손과 발을 바쁘게 만드는 매력이 넘치는 자연의 재료이다.
숲에서 나뭇가지를 찾아보지 않은 친구는 있어도 한 번만 찾은 친구는 없다고, 큰소리치며 단언도 해본다.
살아있을 때는 나무의 팔이었던 나뭇가지는 땅에 떨어지면 아이들과 만나 새로운 팔로 다시 태어난다. 바람 부는 초겨울 숲이 툭 건네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