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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보들 애착잎사귀>

by 신풀

<보들보들 애착잎사귀>

아이들이 나뭇잎을 그리면 초록색 타원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잎사귀를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모양이 제각각이다. 둥근 모양, 길쭉한 모양, 톱니 모양, 하트 모양까지, 크기도 여러 가지에 조금씩 모두 다르게 생겼다. 숲에서 만나는 잎사귀들은 그냥 보면 초록이다. 가만히 살펴보고 잎을 앞뒤로 뒤집어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색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짙고 어두운 초록, 경쾌한 녹색, 사랑스러운 연둣빛이 돌다가 차분한 갈색빛도 띠었다가 노랗기도, 주황색으로도 보인다. 나뭇잎을 들여다 보고 손으로 만져보면 초록만이, 타원형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숲에 있는 잎사귀들이 이렇듯 같지 않은 것처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뾰족한 아이, 둥그런 아이, 까칠한 아이, 보드라운 아이까지 모두 다르다. 이렇게 다른 잎사귀들이지만 함께 어우러져 숲을 이루듯이 아이들도 제각기 다름을 알고 어울림을 배운다.
숲이 낯설거나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과 만나는 날은 늘 손으로 직접 만지기를 거부하는 친구가 한 명씩 있다. 살아있는 곤충이 물까 봐, 열매가 터져 손에 묻을까 봐 겁내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나뭇잎도 만지기 싫어하는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참 먹먹해진다. 그럴 때면 강요하지 않고 관심을 끄는 방법을 사용해 보는데 촉감이 아주 부드러운 잎사귀와 감탄을 잘하는 친구가 큰 도움이 된다. 숲길을 걷다 발견한 잎을 만지며 '와, 엄청 부드럽다'는 탄성을 들으면 아이들은 궁금증에 눈을 반짝이게 마련이다. 만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촉감의 단계로 들어서게 만드는 마법 같은 한 마디는 생각보다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잎사귀 알러지(?)가 있어 만지기를 거부했던 친구는 몇 차례 다른 친구들을 따라 용기 내어 만지는 그 순간부터 부드러움에 퐁당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시작되면 훗날, 밭 한쪽에 모여 나는 쑥도, 개울가에 연둣빛 미나리도, 신맛 나는 괭이밥도 서슴없이 손으로 뜯고 맛보게 되는 엄청난 잎사귀 애호가가 되기도 한다.
덩굴이 무성한 다래나무 앞에 삼삼오오 서서 선풍기를 닮은 다래덩굴의 잎사귀를 찾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문득 뒤통수마다 각각 다른 잎사귀의 역사가 겹쳐 보인다. 초여름 흰꽃의 달콤한 향기에 끌려 찔레꽃을 따다 가시까지 덥석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던 경험, 애기똥풀에서 나오는 노란즙에 매혹되어 모든 손가락에 열심히 색을 칠했던 시간, 쏟아지는 햇빛에 나뭇잎을 무한반복으로 뒤집어가며 반짝거리는 은색에 취해 바구니 한가득 보리수잎을 따던 순간들이 순서대로 하나둘씩 떠오른다. 숲은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고 모든 계절 내내 곳곳에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놓고 숨겨두었다가 아이들의 걸음수만큼 자주 오는 우리들에게만 감질나게 비밀을 공개한다. 더 알아가라고, 더 알아채라고 마치 애정을 시험하려는 것처럼. 역시 숲과 친해지기는 만만치 않다.
왠지 따가울 것 같은 잎사귀를 용기 내어 만지면 낯선 친구의 손도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법이다. 처음에 쭈뼛대던 아이들은 한 친구의 부드럽다는 말에 '나도 나도!'를 외치며 똑같은 잎사귀를 찾는다. 그런 과정에서 한마음이 되어 보고 공감의 즐거움, 놀라움과 감탄을 경험한다. 오고 가는 순간들 속에 멀리 있는 친구에게 '내가 따줄게'와 같은 배려의 말과 나무마다 잎이 나온 순서에 따라 다름을 알게 된 숲선배의 '이게 더 부드럽지'의 정보가 더해지면 '와, 진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와 같은 신뢰와 동경의 말들이 더해진다.
관심이 이끄는 대로 마음도 이끌리는, 신기한 '함께의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끄덕이는 고갯짓 몇 번과 오고 가는 감탄의 눈빛으로도 아이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짙어진다. 생겨난 그 연대의 마음이 자주 반복될 수록 친해짐의 다음 단계가, 그리고 친해졌다는 안심의 순간들을 맞이하며 친구 사귀기로 나아갈 수 있다.

숲에서 흔하게 만나고 아이들이 만지면 기분 좋아지는 나뭇잎은 다름 아닌 생강나무다. 이른 봄이면 산에서 노란색 꽃으로 먼저 만나는 생강나무는, 이름 그대로 생강냄새가 나는 꽃과 낭창낭창한 가지도 좋지만 나뭇잎이 더 매력적이다. 촘촘한 흰털로 덮여있어 만지면 기분이 아주 좋다. 보들보들하고 폭신하기가 아이들이 껴안고 자느라 해진 애착이불의 촉감과 하도 쓰다듬어 헝겊이 얇아진 애착인형의 부드러움을 가졌다. 산 곳곳에 새잎과 들꽃들이 피어나는 만연한 봄날에 연둣빛 둥그런 삼각뿔 모양으로 잎이 돋아나는 생강나무 잎 찾기와 만져보기는 아이들과 반복해도 즐거운 놀이다.
숲이 익숙한 친구들은 봄마다 만나는 이 보들보들한 잎사귀를 애착잎사귀로 삼고 애정한다. 애착, 사랑하여 항상 안고 있고 싶어지는 그 마음을 잎사귀로도 배워본다. 애착인형은 하나뿐이라 없어지면 불안하지만 애착잎사귀는 이곳저곳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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