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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Aug 28. 2024

말 '할까 말까' 할 땐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 최종훈,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장 -


오래전 접한 위 명언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고민이 되는 많은 순간들에, 나에게 해답이 되는 글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힌 5가지 예시 중에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3번째 ‘말하지 마라’다. 말은 꼭 필요할 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필요할 때’가 자주 찾아온다. 외향적인 성향인 나는 서로의 생각이 감춰져 있는 상황이 어렵다. 나의 생각을 털어놓고, 상대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상대의 성향은 어쩔 수 없으니, 나의 생각이라도 잘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긴다.


연애의 과정에서 이 성향은 더 두드러진다. 나는 감정, 사건, 의견, 가치관을 숨기지 않는다. 더 정확한 표현은 표현하려 ‘노력한다’ 일 것이다. 그 이유는 아까 언급했던 것처럼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렇지만,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라는 심리학자는 욕구를 5단계로 분류했는데, 그중 2단계가 안정에 대한 욕구이다. 안정이란, 누군가에게 해코지당하진 않을까 하는 신체적 안정,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쫓겨나진 않을까 하는 경제적 안정, 지금 함께 있는 사람에게 버림받진 않을까 하는 심리적 안정 등이 있다. 경제적 안정을 내가 보장해주진 못한다. 갑자기 거시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거나, 국내 정세 등이 불안해지는 경우 등 주변 환경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을 내가 통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심리적인 안정은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내가 꾸준히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심리적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이다. 이 ‘심리적 불확실성’을 없애는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상대방이 예측 가능하도록 일관된 대답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리저리 생각이나 결정이 흔들려선 안된다. 무언가를 결심했으면, 행동으로도 일관된 모습을 숨기지 말고 ‘보여주어야’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기로 결정했으면, 계속해서 변치 않는 마음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언행일치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내가 항상 해오던 행동, 해오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에 무심코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했던 말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평소에 객관적으로 관찰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나의 미래를 예상하거나 예측하지 않고, 다짐하기보단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에 흔들려서는 일관된 대답을 할 수 없다. 특히 감정이라는 것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여러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이다. H를 만나는 장면에선 그저 온몸을 던져 매 순간을 맞이한다. 사랑뿐 아니라 다른 감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부끄러움, 억울함, 귀찮음, 부러움, 짜증, 슬픔, 미움, 초라함, 두려움, 불안함 등 여러 날 것의 감정들은 드러나는 순간 판단력이 흐려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런 감정들을 느끼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내가 이런 감정들에 많이 흔들린다. 그런데, 표현을 조금 다르게 하려 노력한다. 나 스스로가 그런 감정을 느끼면, 최대한 묘사해보려 한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가끔 나는 두려워."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슬펐어."

"훌쩍 떠날까 불안해."


감정은 묘사해서 설명하는 순간, 객관화된다. 그렇게 느끼는 상태와 이유를 상대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 상대가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여러 감정들을 자유롭게 묘사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나와 H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나는 그 이유까지 분명히 설명하지만, H는 대부분 이유까진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처사다. H의 표현으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우 한석규 님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말을 최대한 아낀다고 한다. 꼭 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 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반대로 나는 H의 앞에서는 항상 생각을 털어놓는다.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어리석음' 혹은 '어리석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말실수를 하는 순간이 잦다고 해도 괜찮다. 불확실한 요소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H가 나에게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으면 한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표현을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오빠 미워.”

“뭐가 미운데?”

“부끄러워서 말 안 할래 ㅎ”


별 것 아니라는 이유라는 것을 안다. 내가 크게 잘못한 일이 아닌 것도 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선 자그마한 불안이 자리한다. 이 불안이 자리하는 이유는 내가 강인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H의 마음 안에 이런 불안이 조금이라도 자리 잡진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말실수를 조금 하고 말지.

차라리 조금 밉보이고 말지.

차라리 조금 어리석어 보이고 말지.

차라리 조금 경솔해 보이고 말지.


어떠한 말을 함에 있어 거짓말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숨겨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최근 살아가면서 내가 하는 거의 모든 행동들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국 H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요즘 그녀를 위해 산다. 지금 전하는 내 의견이 당장은 H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일은 거의 없다. H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의 지향점에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H가 기뻐하는,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최근 나의 행복이다. 이것은 결국 H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H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결국 나 스스로를 기쁘게 하기 위함이다.


좋은 차를 타서 기쁜가?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쁜가?

예쁜 액세서리를 차서 기쁜가?

재밌는 영화를 봐서 기쁜가?

좋은 음악을 들어서 기쁜가?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나는 H가 ‘웃는 모습을 봐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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