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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Aug 29. 2024

사랑한다 ‘할까 말까’ 할 땐.

나는 H에게 사랑한다 자주 표현하는 편이다.


그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


사랑을 많이 느끼는 순간에 ‘사랑한다’고 표현하긴 어렵다. 사랑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사랑해야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그것은 정해진 것이 없다.


물이 몇 도 정도 되어야 뜨겁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비슷하다. 섭씨 40도 정도의 물은 과연 뜨거운 것인가? 기준이 모호할수록,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깊게 들여다볼수록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표현은 점점 어려워진다. ‘정말 사랑하는가’에 대한 성찰은, 표현을 고민하고 머뭇거리게 한다.


사랑은 조금 더 가볍게, 자주.

일도 조금 더 가볍게, 재밌게.

사람들 관계도 심각하지 않게.


무게 잡지 않은, 근엄하지 않은 무조건반사(autonomic reflex)적 사랑은 사람을 행복에 빠져들고 미소 짓게 한다. 무조건반사적 사랑은 연인관계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 사소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무조건적 사랑은 거절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확신을 가지면 하나의 인간은 거친 세상에서 홀로 설 수 있게 된다. 마음을 다쳤을 때 돌아가 쉬고, 회복할 수 있는 둥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대하거나 무례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둥지 같은,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더 잘하게 된다. 둥지가 다치지 않도록, 토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게 된다. 맛있는 것을 같이 먹기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무조건반사적 사랑이 이루어지는 둘만의 장소엔 비가 와도 언제나 햇살이 비쳐야 한다. 바쁘고 지치는 현대사회. 그 누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랴.


데미안 허스트는 최근 작품으로 The Civilisation Paintings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It's often hard to have hope or romanticise about our current landscape or our civilizations but we must have hope, no matter how dark the world gets. But to distract from the nihilism and the hate, I tried to paint them optimistically, like ice cream."
 "우리는 현재의 풍경이나 도시에서 희망이나 낭만을 갖긴 어렵지만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져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만 합니다. 허무주의와 증오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해, 나는 그림을 낙관적으로 그리려 했습니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거장 데미안 허스트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상 속에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분명 데미안 허스트에게도 뮤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만의 장소에는 스트레스를 들고 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잠시 잊어버린 둘은 서로에게 집중한다. 마음속 깊이 누르고 있던 근심과 걱정을 조금 더 가볍게 내어놓고, 내려놓을 수 있다. 사랑은 그래서 조금 더 아이스크림처럼 가볍게, 자주 마주하는 것이 좋다.


일을 할 때에도 가볍게 심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되면 어쩌지, 저렇게 하면 어쩌지 하는 우려를 의도적으로 내려놓으려 노력한다.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있을 만한 근거를 마련해 본다. 그 근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최대한 부담 없게 결정을 내려본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보려 노력한다. 지금의 나는 책임질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책임질 수 있는(져야 하는) 범위가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작은 책임도, 아무리 큰 부담도, 짊어지는 순간엔 가벼운 마음으로 져보려고 노력해 본다. 그래야 조금씩 크기가 커지는, 점점 무거워지는 도전을 가볍게 느낄 수 있다.


사람을 대할 때도 가볍고 재밌게 대해야 부담이 없다. 내가 하는 농담이 '재미없으면 어쩌지' 하는 부담을 내려놓는다. 웃어주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의 가벼운 대화의 시도.  미워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둔다. 미워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 누군가 딱 한 사람만 날 조건 없이 좋아해 준다면 나머진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 내 생에선 그 한 사람이 H이길 바란다.


고민은 신중하게, 결정은 가볍게.


나에겐 40도 정도면 몸을 담그기에 충분히 뜨거운 물이라고 결정을 내려본다.

나에게 이 정도로 H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사랑이라고 결정을 내려본다.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고 표현함으로써 사랑에 점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 말하는 그 가벼운 한마디는 엄격한 기준을 조금 더 부드럽게 녹인다.


나는 오늘도 '사랑한다' 말하며 한 층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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