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연생 Aug 22. 2024

여자친구에게 잘해주는 이유

퇴근길을 함께 걷던 H가 묻는다. "내가 왜 좋아~?"


사랑에 빠진 인간의 습성이다. 사랑을 확인받고자 하는 습성. 누구보다 내가 확인받고 싶다. 나랑 계속해서 만나는 이유가 도대체 뭘지 궁금하다. 그러나 일전에 적었던 것처럼, 솔직한 대답을 직시할 수 없는 나는 물어보진 못한다. 솔직한 대답을 듣는 날이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내가 아니라 여자친구가 궁금해하는 것이니까 여자 친구의 입장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위와 같이 여자친구가 '내가 왜 좋은지', '나에게 왜 잘해주는지' 물어볼 때 "그냥~", "예뻐서~" 등등 귀찮다는 듯 대답하는 남자들이 많다. 예뻐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나중에 얼굴이 늙고 주름지면 안 좋아할 것인지 또 물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여자친구는 늙고 주름져도 아름다울 것이 뻔하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줘도 믿질 않을 것이다. 미래는 100% 확신할 수 없기에 불안해한다. 마음이 변할까 봐. 자신의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많은 여자친구들이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나를 왜 좋아할까?

예뻐서 그런 걸까?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착해서 그런 걸까? 더 착한 여자가 나타나면?

성실해서 그런 걸까? 더 성실한 여자가 나타나면?

아련해서 그런 걸까? 더 아련한 여자가 나타나면?


예뻐서, 착해서, 성실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조건 때문에 좋아하거나 잘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여러 조건적인 요소는 오히려 서로가 관심을 두기 시작할 때에만 필요한 것이다. 서로가 관심을 갖고 사랑에 빠지려면, 어쩔 수 없이 외모, 말투, 태도 등에 매료될 것이다. 하지만 이 외적인 조건들의 역할은 딱 관심을 끄는 것까지다. 그 관심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랑을 시작한다. 외적인 요소들만으로 유지되는 관계라고 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관심 단계에서 끝난 것일 뿐이라 본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점차 서로 신뢰관계를 쌓아가게 된다. 신뢰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서로의 존재만으로 힘이 된다. 서로에 의지하기도 하고, 챙겨주기도 한다.


여자친구를 좋아하고, 잘해주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정답은 내 여자라서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그 본질은 신뢰관계에 기반한다. 신뢰관계에 있다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섭다. 이 사람보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예쁘고 착하고 어쩌고 한 여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무엇을 믿겠는가? 지금 내 여자친구(아내) 이외에는 경계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가설이지만, 왜 그럴까 곱씹어 생각하다 보니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든 생물이 그렇지만, 인간 또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석기시대 움막이나 동굴에서 살던 시절부터 집은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만 했다. 외부 짐승의 침입이나 타 부족의 침략으로부터 완전히 막을 수 없던 그 시절은 밤에 잘 때 온전히 편히 잘 수 없었다. 가족이나 부족 차원에서 불침번을 서면서 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할 필요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가장 곁에 있는 사람들을 믿어야 편하게 잘 수 있다.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인간이 진화하는 게 맞다면, 신뢰하는 이에게 더욱 호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반대로 호감인 사람을 신뢰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메커니즘 일지도 모르겠다.


현대에도 이와 같은 위와 비슷한 느낌의 사례가 남아 있는데 바로 농어촌의 소규모 마을들이다. 이 소규모 마을들은 타지인이 보기에는 텃세가 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신뢰하고, 의지한다. 타지인을 향한 경계가 심하다면 마을사람끼리는 그만큼 친밀하다는 증거다. 아무리 예쁘고 훤칠한 청년이 오더라도 100% 마음을 다 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기에 그들의 경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신뢰와 안전을 느낄 수도 있겠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은 친밀감과 신뢰가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H와의 신뢰관계가 두터워질수록, 친밀감이 더해질수록 그녀의 미모가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인다.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잘 챙겨주기 때문에 훨씬 더 상냥하고, 친절해 보일 수밖에.


연애만 하는 데도 이 정도인데, 결혼하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느낌인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전 23화 소소하게 마주하는 칭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