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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Aug 12. 2024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서로를 대하는 방법

 퇴근 후에 H의 직장 근처 식당에 앉아있다. H의 퇴근 시간은 직장인 평균보다 약간 늦은 저녁 8시다. 그 덕에 근처까지 데리러 가는 호사를 매일 누릴 수 있다. 분명 어제 만났지만, 오늘 유독 H가 그리웠다. 하루가 고된 탓이다. 많은 연인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H에게 의지한다. H도 나에게 의지했으면 한다. 언젠가는 ‘우리’는 서로 의지한다는 표현을 쓰게 될 날이 오길 바란다..


 H와는 다르게 나는 사회에서의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지 않는다. 일 얘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정해야 하는 진로의 문제나, 일을 하면서 배운 점은 종종 얘기한다. 그런데 고민거리를 말하진 않는다. 왜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나의 마음이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늘 그렇듯, 나는 나의 마음을 잘 모른다.


 반대로, 고맙게도 H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기 시작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법한 본인 업무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고맙다. 오늘 H의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어떤 일이 H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궁금하다. 내일은 어떤 일이 두려운지, 어떤 일이 기대되는지 궁금하다. 식사하는 시간이 적적하지 않은 것은 덤이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힘든 하루를 보낼 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힘이 나는 경험. 또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생각하며 힘이 나는 경험. 여자친구를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유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경우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쪽이 맞겠다. 그렇다면 지금의 여자친구를 나의 가족으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반려묘, 반려견 또한 가족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들이 나를 차갑게 돌아서든, 따뜻하게 품속에 안기든 곁에 머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어렵고 마음 아픈 일이 있어도 언제나 지지해 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참 고맙고 힘이 나게 한다.


 H와 함께하는 시간엔 이따금씩 그러한 확신의 감정이 스친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과 함께. 언젠가는 H에게도 나와 같은 순간이 한번쯤은 찾아오길 바란다…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집으로 데려다주고 있다. H의 집 근처로 가는 여름날의 공원 길에, 어제엔 꽃이 피어있던 게 문득 떠오른다. 그 길로 들어서기 직전에 내가 말했다. “오늘도 꽃길 걸어야지.”


 이 말에는 오늘도, 내일도 H가 꽃길을 걸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담겨있다. 혹여나 내가 곁에 없는 순간이 온다고 할지라도.. H가 고생은 적게 하고 꽃길을 자주 걸었으면 한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H가 약간은 무심한 듯, 약간은 설레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맞아.”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지만 밤이 밝다. 보랏빛의 하늘 아래 꽃들이 살랑거린다. 꽃길의 중간 즈음을 지나면 강아지풀들이 나온다. 이곳의 강아지풀은 참 건강하고 당당한 것이 마치 갈대 같다. 나는 꽃보다는 강아지풀이 더 좋다. 강아지풀들은 살랑거리면서도 보드라운 솜털을 가졌는데, 그 솜털들은 사이사이로 달빛을 머금을 수 있다. 달빛을 머금은 강아지풀 위로, ‘꽃길’을 아주 천천히 걷는 H의 손끝이 스친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머리를 흔드는 강아지풀들이, 마치 그 손끝에 닿기를 원하는 것 같다. 생각하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가볍게 뻗은 팔 끝에 나도 닿고 싶다.


늘 그렇듯, 우리는 가벼운 포옹 후에 헤어지며 내일을 기약한다.

늘 그렇듯, H와 함께하는 내일이 다시 한번 주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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