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요즘 망고시루가 유행이래”
“망고시루? 그게 뭔데 ㅎ”
“이거 봐봐. 맛있겠지?”
H가 나에게 사진을 하나 보여준다. 망고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성심당의 시즌 케이크 사진이다. H의 말대로 정말 맛있어 보인다. 나는 얼마 뒤 대전에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 떠오른다. H에게 망고시루를 사다 줄까 묻는다. H는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는 표정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진 못하면서도, 가녀린 팔로는 손사래를 친다.
"에이 됐어~ 이것 때문에 대전까지 가기엔 너무 멀잖아."
내가 진짜로 망고시루 때문에 대전에 다녀올 것 같다고 생각했나 보다. 망고시루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좋았던 것인지, 망고시루를 사러 대전까지 다녀오겠다는 말을 해서 좋았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저렇게 좋아하는 표정을 본 이상, 성심당에 들르지 않을 순 없는 몸이 되었다. 대전에 내려가는 일정은 다음 주말이다. 대전 방문까지 남은 1주일 간 나의 온 신경은 망고시루에 쏠려있다. 인터넷으로 망고시루를 사는 방법을 검색한다. 블로그 리뷰를 참고하자면 평균 웨이팅은 2시간 정도인데, 백화점 지점 성심당 케잌부띠크에 방문하면 30분 만에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날의 일정이 촉박하기 때문에, 망고시루를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간 안배와 빈틈없는 작전이 필요하다.
당일 내려가는 차 안에서도 온통 마음은 망고시루 생각뿐이다. 망고시루를 서울로 무사히 데려오는 방법을 계속해서 검색한다. 망고시루 관련 블로그 글이라면 이미 전부 다 읽었다. 보냉팩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 들고 올 때에는 어떻게 와야 하는지, 만약 들고 오다 실수하면 케이크 모양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망고시루를 무사히 데려올 수 있을지 불안하고 걱정돼서 찾아본 것이 아니다. 그저 망고시루를 무사히 서울까지 데려와야 하는 나의 미션이 정말 재밌다고 느껴진다. 망고시루를 사다 줄까 물었을 때, 행복해했던 H의 그 표정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마주하고 싶다.
평소 같았으면 영화를 한편 보면서 이동했을 것이다. 오늘은 블로그 글만 찾아보는데도 영화 한 편을 본 것보다 훨씬 재밌고 설레는 시간이다. 아마 영화를 본다고 해도 제대로 집중하진 못 할 것이다. 나는 망고시루를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 나의 즐거움 중 하나인 영화감상을 ‘기꺼이’ 포기했다. 포기하면서도, 오히려 즐거웠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집에 머무는 순간을 위해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 위해 나를 위해 구매하던 작은 사치품들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
자기 전 전화 한 통을 위해 게임할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
데이트 후 바래다줄 때 뿌듯함을 위해 몸의 안락함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기 위해 내 취향의 음식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
포기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사랑했다는 증거들 또한 많아지는 것이다.
결국 망고시루를 무사히 데려왔다. 망고시루를 보여주자마자 H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고생해서 데려온 보람이 있다. '내가 망고시루를 먹게 되다니..!'라는 말을 10번 넘게 반복해서 듣는다. 망고시루를 구매하는 순간부터 입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H는 망고시루를 떠서 나의 입으로 먼저 가져다준다. 나는 잠시 설렌다. 입 안에서 가득 퍼지는 망고시루가 맛있긴 맛있다. 케이크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계속 먹게 된다. 밥을 먹고 왔다던 H도 맛있는지 정말 잘 먹는다. 남은 망고시루는 집에 바래다줄 때 손에 들려 보내련다.
늦은 밤 11시 반, 집에 도착한 H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빠 나 망고시루 또 먹고 싶어."
"또 사다 줄까?"
"응. 너무 맛있었어. 고마워."
맛있었다는 한 마디에 대전행 SRT 티켓을 찾아보는 나다. 막차가 끊겼다는 사실에 비로소 나의 마음이 다시 차분해진다.
선물을 사다 준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었던가. 아마도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H가 그만큼 나에게 기꺼이 감사의 표현을 해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이처럼 마법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