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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Aug 13. 2024

가난하게 사랑받고만 싶어. 나는.


가난하게 사랑받고만 싶어. 깊은 마음에 기뻐하게.

- 최유리, 바람 中 -


 저녁 늦게 데이트를 할 때면, 우리는 카페인이 들어 있지 않은 차를 마시는 편이다. 더운 여름이라 루이보스와 페퍼민트를 아이스로 마신다. 둘 다 식단과 칼로리를 신경 쓰기 때문에 다른 디저트는 주문하지 않는 편이다. 가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글루텐 프리 디저트 하나를 시켜 나눠먹지만. 만원 한 장에 차 두 잔이라고 한다면 저렴하진 않은 가격이다. 하지만, 만원 한 장에 서로의 생각과 깊은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두 시간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다.


 돈이 없으면 데이트조차, 어쩌면 사랑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세상. 우리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상한 세상에서 그들과 반대로 생각을 한다면, 과연 정상적인 사람일까? H와 있을 때면 이상하게도 현실적인 고민들은 덜 하게 된다. 애초에 H와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집이나 차량, 결혼 비용 등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여러 요소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연애 그 자체와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고, 더욱 소중해진다.


 차 두 잔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내면 내어놓기와 잠깐 침묵하기를 반복한다. 많은 얘기를 서로 나누었지만 내용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서로가 삶을 통해 꾸준히 생각해 왔던 내용들이라 의견이 다를 게 없고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독특하다 느끼고 기억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화를 나눈 것이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다. 대화 내용의 기억은 없지만 감정 교류와 공감의 기억은 심장과 뇌에 저장된다. 인간의 기억은 뇌에 저장된다는 것이 맞지만, 나는 감정은 심장에 저장된다고 믿고 싶다. 마음이 아플 때는 왼쪽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바래다주는 길에 우리 둘만 들리도록 아주 작게 음악을 틀었다. 오늘 저녁엔 한 노래만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다. L'Amour, Les Baguettes, Paris 라는 음악이다. 집 앞에 도착해서, 여느 때처럼 가볍게 포옹한다. 겹쳐있는 서로의 귀 근처에는, 둘만 들리도록 아주 작은 소리로 계속해서 노래하는 휴대전화가 있다. 이 노래를 잘 들어보면, 실제 프랑스 파리의 소리가 녹아들어 있다.


 제목은 '사랑, 바게트, 파리'라는 뜻이다. 멋대로 해석해 보자면, 사랑과 바게트와 파리는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참 멋진 말이다. 프랑스에는 바게트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만드는 방법도 정해져 있는 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법으로 바게트의 가격을 통제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먹는 것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자, 서로를 향한 인류애의 상징과 같다. 사랑과 바게트, 파리는 사실은 같은 말이었던 것.


 파리에 대한 나의 막연한 환상일 수 있지만, 파리에서는 바게트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는 사랑을 할지도 모르겠다. 파리지앵들은 스스로의 위치나 가지지 못한 것을 남과 비교하며 비관하기보단, 본인만의 삶에 대한 철학과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도. 내가 진정 그런 삶을 살지 못해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각자의 삶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나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과 열등보다는,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물론 자아실현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다.


 사랑은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물질적인 것 이외에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이 있다는 것을 이번 연애에서 깨닫고 있다. 별것 아닌 선물과 별것인 선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10만 원짜리 목걸이 선물은 별것 아닌 선물일 수도 있지만, H의 표현에 의하면 '손 편지는 확실히 별것인 선물'이다.


 바게트 사랑은 우리나라로 치면 '공깃밥' 사랑쯤 되려나. 문득 맛있는 식사 자리에 밥이 없으면 공깃밥을 항상 추가해 달라는 H의 귀여운 모습이 떠오른다.


 파리 거리의 소음과 성당의 종소리가 우리 둘의 귀에만 울려 퍼진다. H와 함께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H의 팔에도 약간은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녀도 나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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