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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Aug 12. 2024

그녀가 아플 때 나는

아침 8시 반쯤 매일 문자를 하던 H가 연락이 없다. 나는 업무를 하면서도 신경이 쓰여 괜스레 휴대전화를 이따금씩 바라본다. 9시 10분쯤 지난 때였나, H가 많이 아파서 연락이 늦었다고 한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운 느낌이라고 한다. 처방받았던 약을 먹고 잤는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여러 번 깼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H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아침엔 함께할 수 없다. 그래서 밤에 잘 때 어디가 아픈지, 목이 마른 지,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물론, 챙겨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력함에 무너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전화를 해 그녀의 컨디션과 원인을 파악하는 일.


하루의 근무를 걱정과 함께한 내가, H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챙기는 것이다. H는 평소에 식사를 잘하지 않는다. 평소에 배가 부른 느낌보다 배가 고픈 느낌을 선호한다. 바쁘고 힘들면 그게 더 심해진다. 어지럽고 힘들어하면서도 밥을 잘 먹지 않는다. 그녀의 삶이 어지러운 이유 중의 절반쯤은 내가 식사를 제때 챙겨주지 못한 탓이리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H의 퇴근 시간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건강한 느낌의 일식집에서 3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H는 이 식당을 참 좋아한다. 메뉴가 많지만, 어떤 메뉴를 골라도 H의 입맛에 다 맞아서 좋다. 게다가 자극적이지 않고 건강하다. 자주 몸이 아픈 H에게 제 격이랄까. 연어 사케동을 수저 한가득 베어 물고 행복한 진짜 웃음을 짓는 H를 보며, 나도 미소 짓는다. H는 나와 있을 때는 이렇게 행복한 웃음은 잘 짓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만 웃음을 짓는 여자라니, 가끔은 음식에게 질투가 난다. 내가 사주는 음식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옆에서 챙겨줌으로 인해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는데, 이런 나 자신을 스스로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자기 효능감을 느낀다. 이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적용된다. 인정에 대한 욕구는 보편적이다. 이 인정욕구는 누군가의 결핍을 채워줄 때에 충족되기도 한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는 어려운 임무를 완수해서 스스로가 이 회사에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체감할 때 인정욕구가 만족된다. 지나가는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렸을 때에도, 요리를 했는데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었을 때도,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한 장면이 추억이 될 때에도 만족된다.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에도 이러한 인정욕구가 발동된다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누군가 곁에서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 일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다. 아픈 사람은 행동의 제약이 큰 만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핍이 클 수밖에 없다.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고, 말하는 것도 힘들다.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몸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면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결핍이 큰 만큼, 누군가가 그 부분을 채워준다는 것에서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많은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만큼 나의 효능감도 올라간다. ‘아, 내가 이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구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이런 마음을 한 번이라도 느끼면 곁에서 챙겨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진다.


한편으로는, 나의 인정욕구와 본능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길 바라는 걸까’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내 마음도 미어지고 걱정스러운 것은 분명하다. 그 걱정스러운 마음이 그녀를 챙겨주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챙겨주지도 않는다.


이런 스스로에 대한 역설적인 고민을 잠시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이 어떻든, 사랑하는 사람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가져오는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다. 결과물이란 상대방을 챙겨주는 행동들을 말한다. 그 행동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거나 살아가는 힘이 되게 한다. 내 마음이 어떻든 중요치 않다.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이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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