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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 왔다. 늦은 저녁, 우리는 이곳에서 책들 중 한 권씩을 골라 편안하고 푹신한 공간에 누워 각자 읽고 있다. 우리는 각자 읽다가도 서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의견을 나눈다.
내가 읽어보고 싶은 책은 '여자는 차마 말 못 하고 남자는 전혀 모르는 것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구절 중 가장 공감이 갔던 말이 있다.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의 최대 목표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구절을 H에게 보여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거 오빠가 맨날 했던 얘기잖아~"
맞다. 많은 남자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최대의 목표는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것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한다는 말도 맞지만,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에는 다음에 이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과 결혼을 기피하는 것의 연관성 대해 말한다.
‘독신 남자들은 이상형의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장 먼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녀 관계를 개선시킬 방법을 배우는 대신 경력을 쌓고 성공하는 데만 열중한다. 어떤 남자들은 돈을 많이 벌 자신이 없어서 이상형의 여자를 만나도 결혼을 기피하기도 한다. 재키와 댄의 경우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들은 9년간 함께 살았는데, 재키는 결혼을 원했지만 댄은 좀처럼 그럴 의사를 비치지 않았다. 그는 재키에게 사랑하고는 있지만 결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 댄은 재키에게서 돈이 많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댄은 결혼을 결심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댄도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섰을 때 청혼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모든 남자들이 돈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누구나 여자가 편히 살 수 있도록 부양할 자신이 있어야만 결혼을 결심한다.’
오래된 책이지만 이러한 구절이 공감이 됐다. 나 또한 그러하다. 커리어에 관한 고민, 직업 안정성에 대한 고민, 사회적인 성공에 대한 고민 등등 살아감에 있어 많은 고민들을 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 혼자만 생각했을 때 재미있어 보이거나 좋아 보이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선택하기도 했다.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즐겁게 일하거나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고, 여행을 가고 싶거나 쉬고 싶다면 잠시 일을 그만두고 쉬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의 즐거움은 내려놓게 된다. 나의 당장의 행복보다, 상대방이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들은 재정적으로, 직업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아니어야만 가능하다. 상대방이 불안하지 않으려면 직업적으로 안정성을 갖추어야만 한다. 사업을 하든, 안정적인 직장을 갖추든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안정성이라는 것 또한 상대적이다. 나는 과연 한 사람을 안심시킬 만큼 충분히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얼마나 벌어와야, 직업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어야 안정적이라고 느끼는지는 모두 다르다. 그것을 갖추기 위해 누구나 노력을 하지만 아직 나는 결혼을 결심하기에 이것을 모두 갖추었다고 자신할 순 없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나 이외에도 많은 남성들이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결혼을 결심하지 못하는 이유,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도 많다. 나도 H를 충분히 행복하게, 부족함 없다고 느끼도록 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H가 당장은 그리고 약간은 부족해도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내면에는 풍족하고 여유 있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H에게 충분히 만족감을 주고 행복하게 한다는 확신이 들면 결혼 결심이 서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정리하자면 현재의 나는 H가 풍족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확신이라는 것은 자신감이 없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먼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2024년의 나는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려나? 많은 어려움들과 고난을 H와 함께 버텨나갈 수 있을까?
H와 함께 조금이나마 남은 어렴풋한 노을을 보며 고민하고 있다. 지금 고민할 일은 아닐 수도 있으려나? 다시 생각해 보면, H는 생각도 없는데 나 혼자 김칫국 드링킹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에 이불킥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나름 진지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보련다.
우리는 노을을 보다 북스테이 근처에 나폴리 피자 파스타라는 화덕피자집으로 이동한다. 오는 길에 H가 운전하느라 고생을 많이 해 안쓰러워 맛있는 음식을 잔뜩 사주고 싶다.
우리는 파스타 하나와 피자 하나를 먹기로 한다. H가 좋아하는 루꼴라가 잔뜩 올려진 피자 하나와 버섯 파스타 하나를 주문한다. 먼저 샐러드와 찢어먹는 빵이 나오는데 이 찢어먹는 빵이 화덕에 구운 것인지 정말 맛있다. 나는 빵에 샐러드를 얹어 싸 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환상적이다. 음식이 맛있는 것인지, H와 함께 먹는 이 시간이 황홀해서 기억에 남기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시 절세미인과 함께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법. 날씨가 선선한데 제법 날씨가 따뜻하다. 말이 이상하지만, 정말 이런 표현이 들어맞는 날이다.
아까 닭갈비와 막국수를 많이 먹은 탓인지, 언제나 이슬만큼만 먹는 H여서 그랬는지, 피자는 몇 조각 먹지 못하고 전부 포장해 왔다.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 H는 차에 타기 전 언제나 그렇듯 감수성이 담긴 아련한 표정으로 얼굴 가까이 떠오른 달을 폰과 마음에 담는다.
나는 그런 H를 마음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