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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Nov 18. 2024

H라는 산에는 메아리가 치지 않는다.

11/18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H라는 산을 등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H는 감수성이 굉장히 풍부한 편이다.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도 대단하다. 나는 그러한 H의 능력을 애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풍부한 감정들은 대개 외부가 아니라 내면을 향한다. H가 아련한 특유의 표정과 분위기를 잔뜩 머금고 가만히 앉아있노라면, 나는 H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하면서도 말해주길 기다린다.


이 기다림의 행위는 궁금함에 대한 저항, 인내를 요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좋아한다면 당연하게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슬픈 표정을 짓는다면, 하루 일과에 슬픈 일이 있었는지 혹여나 내가 슬프게 한 것은 아닐지 걱정하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향해 묻는다. 하지만 H는 가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런 때에는 더는 궁금해해선 안된다. 대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H가 이미 말했을 것이고,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며, 나중에 때가 되어 말할 필요를 느끼면 말해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이게 맞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나는 이런 순간에 H라는 산을 오른다는 감각을 느낀다. 산을 오르는 것 또한 인내를 요한다. 가빠지는 숨을 견디며 리듬감을 가지고 정상을 향해 무릎을 내딛는다. 한발 한발 앞만 보며 나아갈 때에는 얼마나 왔는지 알기 어렵다. 앞으로는 오르막길만 계속해서 펼쳐진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생각보다 높이 올라왔다는 뿌듯함과 함께 자연을 향한 경외감, 너무 높이 올라왔다는 약간의 두려움이 공존한다.


하루하루를 H와 함께 보내고, 둘이 있는 순간에 집중하다 보니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 우리가 만나기로 했을 때 보다 훨씬 관계가 진전됐다. 그때에 비하면 우리가 이만큼 친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중턱쯤 온 것일까? 뒤를 돌아보면 지금까지 정말 높이도 왔구나. 하지만 앞을 보면 막막하기도 하다. 특히 요즘은 더욱 앞으로의 오르막이 더 가파르게 보인다. 가끔은 뒤를 돌아 크게 소리치기도 한다. 그저 메아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기에.


크게 부른 목소리는 돌고 돌아 종종 나에게 다시 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의 소리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H의 감수성은 외면보다 내면으로 메아리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H의 내면에선 계속해서 울리고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굳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맞다. 분명 H의 이러한 신비주의와 아련한 마음에 반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전히 H는 아름답다.


가끔은 H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이 드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날 좋아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본 적 있지는 더 모르겠다. H는 현실적인 성향이라 미래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H가 생각하는 나와 함께하는 미래는, 행복한 모습일까? 슬프게도 나 혼자만, 이뤄지지 않을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마음들은 앞으로의 오르막을 더 가파르게 만든다. 이미 중턱까지 왔지만, H의 산 '입구에 들어선 것을 환영한다'는 표시를 이제야 만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녀도 나와 같다면,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을 것이다. 이렇게 지레짐작을 하며 오늘도 한걸음 더 높은 곳을 향해 한 발짝 더 힘을 실어 내딛는다.


사실, 그녀가 날 좋아하지 않는대도 상관없다. 슬픔은 어느 정도 안고 오른다. 높이 오를수록 먹먹해지는 마음을 안고 간다. 가끔은 그런 먹먹한 마음을 음미하기도 한다. 누군가 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대도, 나의 감정과 생각은 지금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내가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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