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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안경을 닦는데 몸통이 반으로 두 동강 나버렸다. 별로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왜인지 자연스럽게 갈라지면서 안경이 부러졌다. 안경에 테이프를 감아 억지로 이어 붙여본다. 억지로 안경을 쓰는데 초점이 잘 안 맞는지 하루 종일 머리가 어지럽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H를 만나러 왔다. 안경을 고르는 것을 H가 도와주기로 했다. H가 조금 늦었는데, 안경을 고르는 것을 진심을 다해 도와준다. 배고플 텐데. 고마울 따름이다.
결제가 늦어진다. H가 배고플 텐데. 마음이 초조하다. 렌즈를 맞추기 위해 도수도 측정해야 하는데. 기다리는 H에게 미안하다.
H가 먼저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기로 했다. 렌즈 제작을 맡긴 나는 뒤늦게 식당에 합류한다. 이미 많이 늦은 저녁이다.
H는 오늘 안경이 부러진 것을 보고 본인이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고 H에게 말한다. 나는 그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는 H를 좋아한다. 그래서 H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싶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선물을 받을 때에는 소중한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그 선물이 가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H가 나에게 마음을 써주었으면 하는, 내가 H에게 소중한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H에게 안경을 사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저 그 마음을 받고 싶을 뿐이라고.
H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묻는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부터 그랬다고 답한다. 수저를 든 엄지손가락으로 H를 가리키면서. H는 수줍은 듯 손가락을 피하면서 살짝 웃는다.
H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 할 말이 있다고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건넨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초조해진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H의 집으로 향한다.
우리는 손을 잡고 말없이 계속 걸었다. 나는 이따금 바닥이 미끄러울 것 같아 조심하라고 말한다. H는 고맙다고 말한다. 드디어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무슨 말인지 묻는 나의 말에 H는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한다. 한참을 침묵한 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H가 말한다.
"나중에... 오빠가 내 옆에 있지 않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잠시 생각한다.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지럽다.
"나랑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거야...? 아니면 나중에 내가 떠나갈까 봐 그런 거야...?"
H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 오래지 않아 대답한다. H에 눈가에는 밤이슬이 맺혀있다.
"우리가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말을 마친 H는 세상을 잃은 듯 울기 시작한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데도 그 슬픔이 온전히 전해진다.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싫어하는 H이지만, H의 얼굴은 그 슬픔을 온전히 견디기엔 너무나 연약해 보였다. H의 눈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처럼. 어린아이가 그렇듯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H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것 밖에. H는 울음을 그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벤치에 앉은 채로 H를 가볍게 안았다. H의 눈물이 나의 얼굴을 타고 마스크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어깨를 토닥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끝은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빛이 바랠까 마지막까지 꺼내어 보지 못하는, 땅 속 깊이 묻어둔 추억 타임머신처럼. 만약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서로의 아름다운 기억만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는 H의 어깨를 꼭 안으면서 말했다.
"그래... 있고 싶을 때까지.. 있어도 돼."
H가 언제 나의 곁을 떠날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맞다. 처음부터 결말이 예정된 시작이었던 것. 어쩌면 우린 운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이렇게 아플 운명 말이다.
단단한 줄 알았던 나의 마음이 반으로 찢어지더라도. 아름답게, 그리고 영원히 남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