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나에게는 특별한 아버지 빨치산의 아버지였다고 고백한다. 이런 아버지는 나에게는 족쇄와 같은 아버지였다. 특별히 연좌제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전개해 나간다. 이런 심각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유머 있게 서술해 간다. 저자는 전에 빨치산의 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쓴 적이 있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빨치산의 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해방을 위한 삶이기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라고 제목을 정한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벌어진 일을 소개한다. 남의 아버지와 같지 않는 사회주의자로 살았고 빨치산으로 투쟁했던 아버지의 이력은 남달랐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부끄럽지도 않고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이 소설 속에 묻어 있다. 과거에는 이런 소설은 판금 되었고 금기시했으나 이번에는 크게 반향 하였다. 우리 모두 다 아버지가 있고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분단의 아픔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아픔의 흔적을 볼 수가 있다. 4.3 사건과 여순사건 등 이에 따라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 있다. 잘못된 역사왜곡 탓에 이들의 죽음이 정죄되었지만, 이제는 그 역사가 바로잡히기를 원한다. 그동안 조정래의 태백산맥 임철우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사회주의 투쟁에 대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묻어두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꺼내어 이제는 해방일지를 객관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일어난다. 아버지의 친구들에 의한 아버지의 기억, 딸을 통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말하고 있다. 빨치산인 아버지는 그래도 그 속에서 인간미를 찾을 수 있다.
전라도 구례를 중심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일생이 그려진다. 그의 가족사도 흥미롭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재혼이다. 빨치산인 친구의 아내와 결혼한 아버지다. 처음 아버지의 결혼은 부모가 강제로 시킨 결혼으로 그냥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소설의 대부분이 전라도 사투리를 가감 없이 쓰고 있다. 사투리의 강하면서도 구수한 말이 이 소설을 더 맛깔나게 하고 있다. 아버지는 장례식에 대해 화장해서 아무 데나 뿌려달라고 한다. 그는 유물론자와 사회주의자답게 그의 죽음에 대해 부탁한다.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돈 3만 원을 달라고 하는 요구도 가슴이 아프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한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알 때 역사 인식을 바로 할 수가 있다. 모두가 개인주의화가 되어있고 그렇게 살아가지만, 우리 아버지시대의 삶을 바로 볼 수가 있을 때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북분단이 고착되어 서로 적대시하고 있고 그 속에서 많은 가족이 아픔을 겪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하여 남북 이산가족이 재회하는 장면을 보며 울었다. 이 소설은 심각한 역사를 부드럽고 코믹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분단의 아픔을 공감한다.
오늘 분단 이후를 살아가는 세대들을 위하여 이 소설은 과거의 아픔을 소개하며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이러한 소설을 낸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소설은 항상 미래지향적이고 아무도 말하지 못한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때 독자들이 그것에 공감하게 된다. 아무리 사회가 폐쇄적이고 이런 소설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