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딸로 빨치산을 아버지로 둔 저자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우리 사회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여러 가지 비극이 계속되었다. 이념의 갈등으로 오늘까지 우리는 분단 병을 앓고 있고 그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제까지 사회주의자라면 빨갱이라고 경원시했던 문제를 저자는 꺼내놓고 있다. 전에 빨치산의 딸은 오랫동안 판금 된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이 소설에 열광하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개방화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이념을 받아들일만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책들이 나오고 강연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금기시하고 경계의 눈빛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분단은 이처럼 서로를 적대시하고 분단이 고착화되고 이념으로 인해 좌우로 갈리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더욱 정직하게 사회주의를 보고 그들을 껴안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분단의 자식들인 우리는 분단 시대의 산물인 반통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아 왔고 세뇌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소설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동안 잘못된 이념으로 인한 분단의 장벽을 우리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야 말로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감히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소설로 내놓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실제 이와 같은 우리 아버지의 고뇌와 싸움이 해방일지요 우리 역사의 과거사다.
제주 4.3, 여순사건 등 우리 사회는 이념의 대립으로 인하여 무고한 생명의 희생되었고 억울한 한이 맺혀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연좌제라는 말이 나온다. 가족이 공산당과 연관이 있으면 여러 가지 사회적인 제약들이 따르게 된다.
우리가 사는 땅 곳곳에는 이런 6.25 전쟁과 좌우익의 갈등으로 인한 아픔의 현장과 이야기가 남아있다. 임철우의 그 섬에 가고 싶다도 비슷한 내용이다. 우리 지역에도 분단의 갈등 탓에 죽임 당한 민간인 학살 사례가 많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지금 다시 발굴하고 역사적 평가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코믹하게 전개하고 있다. 사회주의로 살았던 해방의 삶에는 삶과 죽음이 갈리는 현장 속에서도 인간적이고 삶의 에피소드가 있는 웃음과 여유가 있다. 작가는 이런 코믹 속에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자, 유물론자로서 아버지의 소신 있는 삶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것을 보고 함께 울었던 적이 있다. 내 생각과 이념으로 다른 체제를 비판했던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구례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최근 현대사까지 기록하고 있다. 전라도 사투리를 써서 더욱 친근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창작 능력으로 인하여 소설적인 재미를 더하게 된다.
그의 가족사도 재미있다. 부모님이 모두 재혼한 사람이다. 빨치산 동료의 아내를 맞아 결혼했던 아버지를 소개하고 있다. 전 남편은 전사했고 아버지가 어머니와 재혼해서 그를 낳게 되었다. 전남 구례 사람들의 순박한 이야기 그리고 빨치산 사회주의자의 생활상과 아버지의 독특한 삶을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가 해방 세상을 꿈꾸며 싸워왔던 삶의 발자취를 그려냈기 때문에 해방일지라고 했다. 그래서 이러한 제목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된다. 아버지라는 말에 자기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 잠기게 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모든 아버지는 우리를 눈물짓게 하는 고마운 분이다. 그러나 자기 가족의 문제보다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화자의 아버지는 더욱 귀하다.
자기 소신에 따라 참된 해방을 위해 싸우다 죽은 남부군과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된다. 그의 장례식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그는 사회주의자답게 사람의 육체가 문드러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의 유골을 아무 데나 뿌리라고 한다. 그에게는 묻힐 땅도 없었기에 화장하게 된다.
이 책은 금기시했던 아픈 민족의 비극을 공론화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는다. 그렇게 함으로 분단된 조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런 비극을 겪지 않는 젊은 세대는 분단의 아픔을 새롭게 인식하고 기성세대는 과거의 역사를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