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그대 그리고 나

by 황인갑

그대 그리고 나

최경희


이기호 작가의 「한정희와 나」를 읽기 전에는 두 사람만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지독한 그리움과 실연의 아픔을 잊지 못해 애인의 이름을 표제로 했을까?


나 역시 섣부른 선입감을 갖지 않을, 서평 제목을 고민하다 보니 표제를 선정하기까지 수 없이

고심하고 수정했을 작가의 고뇌가 느껴졌다.

화자의 장인어른이 다녔던 주물공장이 부도가 나자, 살 길이 막막해진 장모님은 ‘함바집’ 주방으로 일을 나가기 전에 아이가 없는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생 집에 아내를 맡겼다.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역 인근에 살고 있던 친구는 아내가 초등학교 시절 오 년 넘게 돌봐준 ‘마석 엄마, 마석 아빠’가 되었다.


아내가 마석을 떠나고 일 년 후 마석 엄마와 아빠는 고아원에서 중학교 삼 학년까지 다닌 사내 아이, 재경 오빠를 입양해서 키웠다. 그는 결혼해서 딸을 낳았고 이혼 후 사기 및 배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어린 딸을 마석 엄마에게 맡겼는데 마석 아빠가 방사선치료를 받으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초등학교 육 학년에 올라가는 정희를 아내에게 맡겼다.

화자인 고모부는 정희가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될 것 같다는 담임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정희는 ‘학폭위’ 결정 통지문에 의해 ‘서면 사과’ 조치를 받았지만 반성할 줄 모른다.


”이거 고모부가 대신 써주면 안 돼요? 고모부는 작가니까 이런 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

정희는 여름방학이 다 끝나기도 전에 우리 집에서 떠났다

타인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난 잘 안다. 사십 년 전 18평짜리 아파트에 살 때 사촌언니 딸을 맡아서 일 년 남짓 살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조카는 직업 훈련학원을 다니려고 전주로 왔는데 할아버지가 이사하는 바람에 맡게 되었다.

안방 옆방을 내주고 아이 용품을 거실로 옮기면서 한 사람을 맞았던 옛일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도 나도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의 일인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맞이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어떤 시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그건 아이들을 아무리 많이 키우고 있다고 해도 저절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에 예상 가능한 아이란 없는 법이니까……(p20-21)

‘고통’과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허상에 불과하다고 화자는 고백한다.

화자는 작가로 십오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써왔다.


주변에 널려 있는 제각각의 고통과 무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을 여러 편 썼지만 그걸 쓰는 과정은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았음은 고통에 대해서 쓰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p33)


‘절대적 환대’는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우리의 내면은 늘 불안과 절망과 갈등 같은 것들이 함께 모여 있는 법인데,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p33-34)

황순원문학상 심사평은 ‘화자의 타자에 대한 이해의 실패와 그런 실패를 소설로 쓸 수 없는 문학적 실패를 경험한 문학적 증언을 듣고 난 후 상처받을 권리와 위로해 줄 의미는 독자들에게 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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